서울 동작구에 있는 식당 ‘족발슈퍼’는 칼국수 한 그릇을 4천원에 판다. 한국소비자원이 고시한 지난달 기준 서울 평균 칼국수 값(8962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육수에 들어가는 멸치 한 상자가 지난해 1만원에서 올해 1만7천원으로 70%나 올랐지만, 가게 주인 조순희(56)씨는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청년들이 ‘사장님, 혼잔데 식사 되나요?’ 물어보면서 들어와요. 대학생들이고, 혼자 사는 직장인들인데 어떻게 더 올리겠어요.”
조씨는 12년간 3천원이던 칼국수 값을 지난해 말에 1천원 올린 것도 미안하게 여겼다. “혹시 사장님이 건물주냐”고 묻는 손님도 간혹 있다고 했다. 조씨는 칼국수를 팔아 남는 게 거의 없지만, 휴일에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다.
고물가로 ‘외식이 무섭다’는 이들이 늘어나지만, 서울에서도 여전히 조씨처럼 저렴한 가격대를 고수하는 가게들이 있다. 대체로 가족과 운영하거나 나홀로 영업으로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곳들로,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박리다매’ 전략을 쓴다.
서울에선 동작구와 관악구에 이런 식당과 상점들이 몰려 있다. 예전부터 고시촌이 형성돼 서울 안에서도 비교적 물가가 낮았던 지역들이다. 실제 행정안전부가 주변 물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를 골라 지정한 ‘착한 가격 업소’를 살펴보면, 서울시의 경우 올해 동작구(98곳)에 가장 많았고, 관악구(85곳)가 뒤를 이었다.
관악구에 있는 식당 ‘청년 밥상 문간’도 김치찌개와 밥을 3천원에 판다. 주인 이아무개(59)씨는 ‘가격을 올릴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청년들이 부담 없이 밥 한 끼 먹었으면 한다”며 “더 올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지난해 5월부터 운영 중인 이 가게는 적자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다. 건물주가 후원 성격으로 매장을 무상으로 제공한데다, 손님들이 종종 내는 기부금 덕분에 버티고 있다. 이씨는 “3인분 시킨 뒤 2인분만 달라고 하거나, 기부 상자에 몇천 원씩 넣고 가는 손님들이 있다”며 “어떤 분은 부모님이 고향에서 수확한 쌀이라며 보내주신다”고 말하며 웃었다.
동네 세탁소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착한 가격’을 유지했다. 관악구 신림동에서 세탁소를 운영 중인 김영선(53)씨는 20년 넘게 기본 정장 드라이클리닝 비용 3900원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서울 평균 가격은 9천원이다. 그는 “기름값이 오르면서 세탁 비닐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단골과 소개로 온 손님들을 오래 유지하려고 가격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동작구에 있는 ‘소망 세탁소’ 앞에도 ‘착한 가격 업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수선비 3천원, 세탁비 5천원으로 주변보다 10~20%가량 저렴하다. 이 세탁소 직원은 “가격을 올릴 필요도 있어 보이지만, 착한 가격을 유지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있다”고 말했다. 소망세탁소를 종종 찾는다는 손님 전명균(76)씨는 “노부부가 운영한 지 오래됐는데 친절한데다 다른 데보다 싸고 잘해줘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고나린 기자, 곽진산 기자 /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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