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예산안에 대해 토론하는 국회 공청회에 약 11년 만에 이공계 인사가 단상에 서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비판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일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천승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가 순서대로 정부 예산안에 대한 의견을 펼쳤다.

천 교수는 이날 진술에 나선 전문가 중 유일한 이공계이자 물리학자다. 통상 경제·정책 전문가들이 나선 가운데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R&D 예산 삭감’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천 교수 이전에 국회 예산 공청회에 진술자로 나섰던 이공계 전문가는 2013년도 예산안 공청회에 참석했던 신민호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토목공학)이 가장 최근이었다.

천 교수는 “제가 아마 예결위 공청회에서 진술하는 최초의 물리학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는 그와 동시에 제가 (공청회에서 진술하는) 마지막 기초과학 연구자이기를 바란다”며 말문을 뗐다.

그는 R&D 예산이 최근 급증해 왔다는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천 교수는 “정부 R&D 예산은 최근 급증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 총지출 대비 비중으로 따져보면 10년 전인 2014년 수준을 간신히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제서야 겨우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74번의 목표인 5%에 근접해 정상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간신히 따라잡았는데 급격한 증가에 따른 비효율을 이유로 2024년에 다시 삭감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천 교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연구 역량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른) 향후 4년 동안의 (예산) 삭감분은 24조원으로 올해 정부 R&D 예산 10개월치에 해당한다”며 “얼추 3년치 양식으로 4년을 먹으라는 얘기다. 이건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냥 1년을 뒤처지라는 소리”라고 했다.

특히 그는 이번 예산안에서 기초연구사업 중 생애기본연구, 학문균형발전지원 신규 과제를 없앤 것을 두고 “미래 성장 사다리를 완전히 걷어차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천 교수는 신규과제 지원 중단은 포닥(박사후연구원)과 비전임 연구원 등 미래 연구인력이 연구 현장을 떠나거나 급격한 해외 두뇌 유출을 야기할 수 있다고도 짚었다.

천 교수는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R&D 시스템을 원하신다면 지속 가능한 연구 생태계를 유지시켜 주셔야 한다”며 “저희가 나태함과 위태로움의 경계에 있는 것이다. 약간의 나태함을 경고하기 위해서 매우 위태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이번 예산안이라고 제가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또한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조승래 의원은 이날 질의에서 “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특히 우리 젊은 연구자들이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연구 현장을 계속 지켜야 할 것이냐는 회의감까지 매우 크게 확산이 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R&D 예산 16.7% 삭감 조치는 연구자의 사기를 갉아 먹고 있는 매우 안 좋은 예산 편성”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 출신의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도 “군사작전 하듯이 가뜩이나 부족한 R&D 예산을 졸속으로 삭감한 상황이 되다 보니 졸지에 연구자들이 다 범죄집단이 됐다”며 “R&D 예산 삭감이 연구자의 연구 환경과 처우 악화로 계속 가고 있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천 교수가 언급한 총지출 대비 R&D 예산 비중이 아닌 재량지출 대비 비중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총지출 중에는 의무지출도 있고 재량지출도 있기 때문에 저는 총지출을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재량지출을 놓고 보면 2012~2021년까지 거의 큰 차이가 없이 재량지출 대비 R&D 예산이 평균 9.3% 정도”라고 했다.

올해와 내년도 예산을 합쳤을 경우에는 이 평균 수치를 다시 회복한다는 것이 장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2022년 9.5%, 2023년 10.3%로 급격하게 늘었다”며 “그래서 내년 예산까지 합쳐서 재량지출과 R&D 예산 비율은 다시 원래 있었던 9.3%에 가까운 평균 9.4%로 수렴하게 된다”고 했다.

장 의원은 “어떤 예산이든 늘리면 좋겠지만, 예산은 경직성이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통해서, 그리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서 사회적 약자나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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