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인상 기대가 약해지면서 달러화 강세가 소폭 꺾였지만, 국내 소비자물가는 3개월 연속 상승폭을 키우고 있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긴축이 마무리되면 한은도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시점을 앞당길 수 있으나, 반대로 미국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고 국내 물가도 오름세를 이어갈 경우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내년 상반기 이후로 더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은은 2일 이상형 부총재보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간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따른 국내 금융·외환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Fed는 이날 정책금리를 시장 예상대로 동결(5.25~5.50%)했고, 이에 따라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2%포인트를 유지했다.

한은은 FOMC 정책 결정문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기자회견 내용이 다소 비둘기파적(통화 완화 선호)으로 해석되면서 국채 금리는 하락하고 주가는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파월 의장이 최근 미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이 정책금리 인상 효과를 대체하고 있다고 인정한 만큼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하락세를 보였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8.8원 하락한 1348.5원에 개장한 뒤 장 초반 1340원대 초중반에서 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환율이 1360원까지 치솟았던 것을 고려하면 뚜렷한 내림세다.

특히 파월 의장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중반 이후 완만해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시장에선 사실상 Fed의 금리인상은 종료됐다는 평가가 많다. 영국 경제연구기관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Fed는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비둘기파적인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과 향후 데이터 둔화를 감안할 때 추가 인상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오는 30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결정회의를 앞둔 한은 역시 7연속 동결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물가 상·하방 불확실성이 혼재한 가운데, 지난 2월부터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면서 추가 인상 가능성만 열어두고 있다. 미국 통화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한국으로선 Fed가 동결했는데 나홀로 금리인상에 나서기 힘들다.

이상형 부총재보는 “이번 FOMC 회의에서 최근 장기금리 급등에 따른 금융 여건 긴축이 고려 요인으로 제시되면서 추가 금리인상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일부 완화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파월 의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한 긴축기조 유지 필요성을 일관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과 오름폭을 키우고 있는 국내 소비자물가는 한은의 기준금리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날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지난 8월(3.4%), 9월(3.7%)에 이어 10월(3.8%)까지 3개월 연속 상승폭이 커졌다.

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른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까지 불안한 상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전날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국제유가가 90달러 이상으로 올라가면 저희 (물가·성장률) 예측이 많이 변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당초 국제유가를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평균 84달러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도 유가, 농산물 가격 상승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물가 흐름이 당초 예상은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오전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사태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한층 커진 상황”이라며 “다만 유가가 추가로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면 물가는 앞으로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한은이 당분간 매파적 성향을 띈 동결 기조를 이어가다가 내년 2분기 이후에나 미국의 피벗 조짐이 뚜렷하게 확인되면 금리인하를 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확실히 Fed의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톤은 약화되기 시작하는 모습”이라면서도 “아직 통화완화 전환에 대한 힌트는 없기 때문에 기존 예상대로 고금리 장기화 경로로 갈 가능성이 높고, 한은 역시 유사한 정책 결정을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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