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지정학적 요인으로 유가 하락 폭이 축소된 데다 기상악화 여파로 농산물 가격까지 오르면서다. 정부는 물가 하락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해지자 범부처 특별대응체계를 가동하기로 했다. 또 연말에는 물가가 3% 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유지했다.

유가 변동이 가장 큰 변수

2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은 올 1월 5.2%에서 3월 4.2%, 7월 2.3%로 내려왔지만, 다시 석 달 연속 오르면서 4%대에 근접했다. 체감물가로 불리는 생활물가의 경우 7월 1.8%에서 10월에는 4.6%로 올라 상승폭이 더 컸다.

오름폭이 커진 배경에는 유가가 있다. 지난달 석유류 지수는 전년 같은 달보다 1.3% 하락하는 데 그쳤다. 석유류는 지난 7월 -25.9%, 8월 -11.0%, 9월 -4.9% 등 하락세가 둔화하고 있다. 김보경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아직 전년과 비교해 마이너스지만 그 폭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면서 “(석유류가) 최근 3개월간 소비자물가가 오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WB)은 지난달 30일 ‘원자재시장전망’ 보고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중동 지역의 ‘대규모 교란’으로 번지면 유가가 56~75%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전날 “내년 유가가 90달러만 돼도 한은의 예측이 많이 변할 수 있다”, “8~9월 유가 변동이 발생하면서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축수산물도 지난해 10월보다 7.3% 오르며 물가상승세를 키웠다. 상승폭은 9월(3.7%)보다 두 배가량 확대됐다. 특히 채소류(5.3%)를 비롯한 농산물 물가상승률이 13.5%를 기록했다. 2021년 5월(14.9%) 이후 2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품목 중에서는 사과(72.4%), 상추(40.7%), 파(24.6%), 토마토(22.8%) 등이 가파르게 올랐다.

신선식품지수는 12.1% 상승해 지난해 9월 12.8%를 기록한 이래로 13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신선식품지수에는 가격변동이 큰 채소와 과실류가 포함돼 있는데, 이상저온과 같은 기상 여건 때문에 수확량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 품목 중에서는 신선과실이 26.2% 올라 2011년 1월 31.9% 이후 최대였다.

기획재정부는 예상보다 하락 속도가 완만하지만 연말에는 소비자물가가 안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석유류 평균 가격이 9월보다는 높았지만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근거다.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지난 9월 배럴당 93달러에서 지난달 말 88달러까지 하락했다. 농산물 가격은 10월 중하순 이후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장 재료 비축물량 푼다

정부는 김장철 물가안정을 위해 소비자의 김장재료 구매비용을 지난해보다 낮추기로 했다. 배추·무와 고춧가루, 대파 등은 정부비축물량(약 1만1000t)을 최대한 방출한다. 특히 천일염은 역대 최고 수준인 1만t을 전통시장, 마트 등에 시중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할인해 공급한다.

농수산물 할인지원에는 245억원을 투입한다. 지난해(138억원)보다 77.5%(107억원) 많은 금액이다. 배추와 대파, 생강은 농협 등과 협조해 대형마트 공급가격 인하를 지원한다. 대형마트 등에 20~30% 할인을 지원함으로써 업체별 자체 할인을 더할 경우 소비자 부담은 최대 50%까지 경감될 전망이다. 한돈자조금(6억원 내외)을 활용해 돼지고기 삼겹살과 앞다릿살 등 할인(20% 내외)도 유도한다.

정부는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구매 한도를 12월 말까지 1인당 월 최대 30만원으로 확대하고 김장재료 판매점포 등을 대상으로 상품권 가맹점 가입도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는 취약계층·시설에 대한 에너지 비용 지원을 늘리는 등 겨울철 난방비 부담 완화에 나선다. 어린이집을 도시가스 요금할인 대상 시설에 추가해 다음 달부터 요금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전국 2만여개 어린이집이 약 16%가량 요금을 감면받을 전망이다. 전국 경로당(6만8000개소)에 대한 동절기(11~3월) 난방비 지원을 5만원 늘려 월 37만원을 지원한다.

에너지바우처 지원금액은 지난해 한시적으로 확대한 수준과 동일하게 가구당 평균 30만4000원을 지원한다. 등유를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생계·의료 수급자 중 소년소녀가정과 한부모가정 약 4500가구에 대한 지원금액은 31만원에서 64만1000원으로 늘린다. 연탄을 사용하는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독거노인, 장애인, 한부모·소년소녀가정 약 4만가구에 제공하는 연탄쿠폰은 가구당 47만2000원에서 54만6000원으로 확대한다. 소상공인에게는 동절기(10~3월) 사용분 도시가스 요금에 대해 월별 청구 요금을 각각 4개월간 균등 분할납부를 허용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이 돼 소관 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면서 “수급관리와 제도개선처럼 관계기관 간 공조가 필요한 사항은 물가관계장관회의·차관회의를 통해 즉각 대응하는 등 전 부처가 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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