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고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치솟았던 글로벌 전기차에 대한 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테슬라가 불붙인 전기차 가격 인하 경쟁이 치킨게임으로 치닫는 가운데, 고금리 장기화 기조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가 자동차 산업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각 전기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상황 속에서 향후 수년간 만성적 저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글로벌 車제조사들 ‘전기차 투자’에 급제동

최근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를 비롯해 포드, 제너럴 모터스(GM), 메르세데스 벤츠 등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앞다퉈 전기차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연기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높아진 금리 탓에 소비자들의 수요가 둔화하고 있다”며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포드는 기존 물량 공세 전략을 접었다. 전기차를 대거 공급해 시장 선점에 나서는 전략에서 수익성 확보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포드는 “가격 하방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전기차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설비에 대한 투자액(150억달러)의 일부인 120억달러에 대한 지출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대표 전기차인 ‘F-150 라이트닝’ 생산도 일시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팔면 팔수록 적자가 불어나는 구조를 탈피하지 못한 데 따른 고육책이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하랄트 빌헬름은 “가격 경쟁 심화와 고금리로 인한 수요 둔화로 전기차 시장이 지속 불가능한 사업이 되고 있다”며 “(전기차 시장은) 매우 잔인한 분야”라고 분석했다.

GM은 일본 혼다와 진행 중이던 6조8000억원 규모의 보급형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메리 바라 CEO는 “올 하반기 10만대, 내년 상반기 4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겠다는 기존 목표를 포기하기로 했다”면서 “전기자 전환을 위한 과정이 더 험난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괴리의 함정…높은 가격에 멀어지는 소비자들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전기차 산업의) 성장 둔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던 제조사들과 투자자들은 ‘붕괴(melt-down)’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조사와 투자자들이 최근 수년간 전기차 도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지만 수요 둔화로 양적·질적 성장 모두 정체되자, 모두 발을 빼고 있다는 것이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 “시장 붕괴의 명확한 증거는 아직 없지만, 성장 속도는 분명히 감소하고 있다”고 짚었다.

전기차 시장에 닥친 수요 감소의 이유로는 높은 가격이 꼽힌다. 전기차 시장은 높은 가격과 인프라 부족을 개의치 않았던 얼리어답터들이 이끌던 ‘개화기’를 지나, 일반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전기차 구매에 뛰어드는 ‘확산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조사와 소비자 간의 ‘적정 가격’에 대한 괴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가격을 떨어뜨리면서 수요 창출에 나섰지만 시장이 반응하기는 힘든 수준으로 보인다. 테슬라의 경우 일반 소비자층 공략을 위해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신차 가격을 최대 30% 대폭 인하하는 공격적인 판매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가격 인하 행보에 속속 동참했다. 이로 인해 미국 자동차 평가기관인 켈리 블루북에 따르면 미국 내 전기차 평균 가격은 9월 말 기준 5만683달러로, 전월(5만2212달러) 대비 3%, 1년 전 대비 22%가량 떨어졌다.

시장의 기대감이 컸던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 출시 일정도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 3월 7년 만에 장기 사업 계획 청사진을 공개했지만, 투자자들이 기다렸던 ‘반값 전기차’에 대한 구상은 담지 않았다. 반값 전기차 대신, 전기차 제조 원가를 현재 대비 절반으로 낮추는 ‘반값으로 조립’ 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머스크 CEO는 2020년 9월 신기술 공개행사인 ‘배터리데이’ 행사에서 처음으로 “올해 2만5000달러짜리 (반값)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가격에 대한 제조사와 소비자 간 ‘동상이몽’은 앞으로 풀어가기 힘든 상황이다. 미·중 갈등과 중동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에 원자재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졌고, 차량용 반도체 생산능력도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최근 자동차 제조사 3사의 노조 파업으로 인해 생산 비용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포드는 미국 완성차 3사를 상대로 한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동시 파업 여파로 신차 가격이 이전보다 850~900달러 더 비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크 필즈 전 포드 CEO는 “전기차 사업 마진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낮아지는 수요를 감안해 당분간 내연기관차를 통한 손익 보전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짧은 주행거리, 충전 인프라 부족 등도 한계도 작용하고 있다. 코네티컷주 뉴런던에 사는 제프 아이오사는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높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에 대한 우려”라며 “전기차로 장거리 여행할 때 관련 인프라가 충분한지 고민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카구루스는 여전히 높은 가격과 불완전한 인프라, 이 두 가지 조합이 전기차 산업 성장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더기 투매에 주가 하락…투자 신중론

시장에서는 전기차 시장의 부진이 단기간 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시장 조사 전문기관인 블룸버그 뉴에너지 파이낸스(BNEF)는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낮아지기까지는 최소 3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스너 애널리스트는 “오는 2025년까지는 전기차 신차 가격이 대중화를 이끌 수준까지 의미 있게 낮아지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전기차 가격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충분히 낮아질 수 있는지가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큰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투자자들의 투자 열기는 점차 식어가고 있다. 테슬라 주가는 올해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지난달 18일 이후 최근 2주간 최대 23%(종가 기준) 급락했다. 주당 400달러를 넘보던 2021년 11월과 비교하면 현재 주가(주당 219.96달러)는 반토막 가까이 났다. 장기 이익 성장성에 비해 현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는 우려 속에 매도세가 쏟아진 결과다.

추가 하락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LSEG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월가 애널리스트 14명이 테슬라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하향했다. 목표주가 평균치는 260달러까지 낮아졌다. 전기차 전환 계획에 속도는 늦추겠다고 밝힌 포드차의 주가도 발표 이후 최대 7% 가까이 떨어졌다.

GM의 올 한 해간 주가 하락 폭은 17%를 기록했다. 고점(2월13일) 대비로는 31%나 추락했다. 로스너는 미 경제전문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전기차주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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