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9개 프랜차이즈서만 일회용컵 10억여개 달해

종이컵 분리배출 늘린다지만, 구체적 방법 없어…세계는 플라스틱 빨대도 ‘퇴출’ 추세

총선 앞두고 ‘선심성 정책’ 분석도…국민 여론은 “일회용품 규제해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서 폐기물과 재활용품을 처리하고 있다. [공동취재]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서 폐기물과 재활용품을 처리하고 있다. [공동취재]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홍준석 기자 = 294억개.

정부가 2019년 11월 발표한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에서 제시한 2018년 기준 연간 일회용 컵 사용량이다.

당시 정부는 일회용 종이컵 사용을 금지하고, 컵 보증금제를 도입해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 일회용 컵 사용량을 84억개에서 55억개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식당 등에서 종이컵 사용 금지와 컵 보증금제가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시행됐다.

1년이 지난 현재 한 조처는 없어지게 됐고, 다른 조처는 유명무실해질 상황에 놓였다.

환경 정책의 전면적인 후퇴라는 질타와 함께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자영업자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식당 종이컵 금지…정권 따라서 ‘오락가락’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24일 시행돼 현재 계도기간 중인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를 철회한다고 7일 발표했다.

2003년 도입돼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6월 사라졌던 조처가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되살아났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없어지는 것이다.

이날 환경부는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 금지, 종합소매업과 제과점에서 비닐봉지 사용 금지 조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해 일회용 컵 보증금제 축소·지연 시행과 더불어 현 정부의 일회용품 정책 후퇴 사례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TV 제공]

[연합뉴스TV 제공]

◇ 식당·카페 일회용컵 사용량 연간 ‘수백억개’

국민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일회용품 양은 13.6㎏이다.

우리나라 전체로는 연간 70만3천여t의 일회용품이 버려진다.

버려지는 일회용품 49%가 종이컵 등 폐종이류이고, 41%는 플라스틱 컵을 비롯한 폐합성수지류이다.

일회용품 중 일회용 컵 비중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3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1년(2020년)간 사용한 일회용 플라스틱양을 19㎏로 추산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은 1인당 연간 1.4㎏(102개)씩 쓰는 것으로 추정했다.

식당과 카페에서 일회용 컵이 얼마나 쓰이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연간 수십억개에서 수백억개에 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환경부와 일회용품 줄이기 협약을 맺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19개 업체의 일회용 컵 사용량만 작년 기준 10억3천590만여개다. 이 가운데 종이컵은 43%, 플라스틱 컵은 57%였다.

충남대와 이담환경기술, 대전녹색환경지원센터가 작년 대전 식품접객업소 390곳을 조사했을 땐 업소 1곳당 월평균 4천557개의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 일회용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량은 월평균 3천437개였다.

전체 일회용품 사용량은 월평균 1만7천139개로 연간으로 20만개가 넘었다.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철회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1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 철회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종이컵 재활용한다지만…실현 가능성은 ‘글쎄’

종이컵 사용 금지 철회 배경엔 ‘소상공인들의 부담 호소’와 함께 ‘재활용되는 종이컵이 플라스틱 컵보다는 낫다’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종이컵 금지 대안으로 ‘분리배출을 통한 재활용률 제고’를 제시했다.

식당에서 주로 사용하는 185㎖ 종이컵처럼 음료가 담기는 안쪽만 폴리에틸렌으로 코팅된 컵은 코팅을 벗겨내고 종이 부분만 살려 재활용하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 재활용업계 설명이다.

문제는 양면 코팅이 아닌, 단면 코팅된 종이컵조차도 분리배출이 제대로 안 돼 재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종이컵 재활용률은 환경부 추산으로도 13%에 불과하다.

환경운동연합은 2021년 일회용 컵 재활용률이 5% 미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에 환경부는 종이컵 분리배출로 재활용률을 높이겠다면서 ‘더 정교한 시스템 마련’ 외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대안 없는 규제 철회라는 비판이 나온다.

재활용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충남대 환경공학과 장용철 교수는 “환경에 피해가 크지 않은 범위에서 플라스틱 컵 대체제로 종이컵을 쓰는 것은 괜찮을 수 있다”면서도 “플라스틱 컵이든 종이컵이든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2일 일회용품 규제와 관련한 소상공인 간담회가 열린 서울 양천구 한 카페에 플라스틱 빨대와 스테인리스 빨대가 함께 놓여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일 일회용품 규제와 관련한 소상공인 간담회가 열린 서울 양천구 한 카페에 플라스틱 빨대와 스테인리스 빨대가 함께 놓여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세계는 플라스틱 빨대 금지 추세…한국만 ‘역행’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 금지 계도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한 것을 두고는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려는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국은 플라스틱 빨대 규제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뉴질랜드는 올해 7월 1일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2026년부터는 음료 곽 등 제품 포장에 붙은 빨대도 금지할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7월부터 ‘일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지침’에 따라 빨대 등 플라스틱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했고, 독일과 프랑스 등이 이를 따르고 있다.

베트남은 2025년부터 호텔이나 관광지 등에서 빨대를 비롯한 플라스틱 일회용품과 생분해가 어려운 플라스틱 포장 사용을 금지한다는 일정을 세워둔 상태다.

한국만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편의점 비닐봉지 금지 계도기간을 “지금도 안 쓴다”라는 이유로 연장한 것을 두고는 환경부 스스로 ‘엇박자’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식당 종이컵 금지와 플라스틱 빨대 금지는 “규제를 이행할 여건이 안 된다”라면서 철회하거나 계도기간을 연장하고서는, 편의점 비닐봉지 금지는 “잘되고 있으니 계도기간을 연장한다”라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편의점 비닐봉지 70%가 ‘생분해성 비닐봉지’인데, 현재 쓰이는 생분해성 비닐봉지 대부분은 60도 안팎 고온의 땅에 매립돼야 분해되는 등 사실상 생분해가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환경부가 “편의점에서 생분해성 비닐봉지 등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비닐봉지 금지 계도기간을 연장한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회용품 규제관련 소상공인 간담회
일회용품 규제관련 소상공인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양천구에 소재한 커피전문점에서 열린 일회용품 규제관련 소상공인 간담회에 참석해 업계 대표 등 참석자들과 일회용품 사용 제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2023.11.2 [환경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총선 앞둔 ‘선심성 정책’ 분석도…국민 여론은 “규제해야”

이번에 환경부가 계도기간 종료를 보름여 앞두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눈치 보기 끝에 숙고 없이 정책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최근까지 계도기간 종료에 맞춰 설명회를 진행해왔다. 환경부도 지난 9월 권역별 설명회를 진행했다. 식당 종이컵 금지를 철회하는 등의 결정이 최근에 ‘급하게’ 내려졌다는 방증이다.

현 정부 들어 일회용품 정책이 정치에 따라 흔들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년 4월 코로나19로 일시 허용된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금지할 때 적발 시 과태료 부과는 유예한 것이 꼽힌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이 일회용품 규제를 유예하자고 발언한 직후 이런 결정이 내려져 환경부가 눈치를 봤다는 뒷말이 나왔다.

이번 식당 종이컵 금지 철회 등을 두고도 결국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표심’을 겨냥한 조처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국내 일회용품 규제가 소상공인과 소비자 등 일부만 겨냥해 이뤄지다 보니 여론에 흔들린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와 관련해서도 환경부가 제도 이행 부담은 프랜차이즈 카페 점주와 소비자에게만 지우고, 수거와 재활용이 쉬운 ‘표준 컵’ 사용 강제 등 프랜차이즈 본사가 부담스러운 일은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크다.

이날 환경부는 “일회용품 감축 수단이 규제와 처벌이면 실질적 결과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국민 생각은 다르다.

환경부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작년 10월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일회용품 사용량 절감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97.7%,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응답자가 87.3%에 달했다.

응답자들은 일회용품 사용 절감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종이 등 대체품 활용'(31.5%)을 가장 많이 꼽았다.

특히 ‘일회용품 사용 시 추가 비용 지불'(14.3%), ‘일회용품 사용 금지 등 강력한 규제'(12.1%), ‘사업자에 일회용품 과태료 부과'(8.4%)를 꼽은 사람이 ‘교육과 홍보를 통한 자발적 사용 억제'(8.4%)보다 훨씬 많았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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