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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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유권자 대부분이 투표일에 가까운 투표소를 방문해 투표권을 행사할 텐데요. 불가피한 사유로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예 투표를 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헌법은 국민 누구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투표소까지 갈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한 투표 방법도 마련해놓고 있는데요. 바로 거소투표와 선상투표입니다.   

거소투표는 투표소까지 올 수 없는 선거인이 투표소에 가지 않고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선상투표는 대한민국 선박에 승선할 예정이거나 승선하고 있는 선원이 선박에서 팩스로 하는 투표를 말합니다.
 
거소투표나 선상투표를 하려면 반드시 사전 신고를 해야 합니다. 신고 기간은 선거일 22일 전부터 5일 이내며, 직접 방문, 우편, 또는 인터넷으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서는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거소투표·선상투표에 대한 사전신고가 진행됐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배포한 거소투표·선상투표 안내 보도자료 일부/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배포한 거소투표·선상투표 안내 보도자료 일부/사진=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참정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거소투표
 
참정권은 국민이 주권자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데요. 그중에서도 선거권은 국민이라면 예외 없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 투표소까지 이동하기가 힘들거나 멀리 선박을 타고 나가 있는 상황이라도 이 권리는 보장돼야 합니다. 선상투표와 거소투표가 만들어진 이유인데요. 
 
거소투표 대상자에는 누가 해당할까요? 공직선거법 제38조 제4항에 따르면 △신체에 중대한 장애가 있어 거동할 수 없는 사람 △병원·요양·수용소·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기거하는 사람 △사전투표소와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영내 또는 함정에 근무하는 군인이나 경찰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 규칙으로 정한 외딴 섬에 거주하는 사람 △격리자 등은 거소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법은 특히 장애인, 노약자 등 약자의 선거권을 평등하게 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공직선거법 제6조에 따르면 국가는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거주하는 선거인 또는 노약자·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 대한 교통편의 제공에 필요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장애인복지법 등에 국가가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및 선거권 행사를 위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역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 소수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할 것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22년 정신질환이 있는 A씨는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병원 폐쇄병원에 입원해 있어 선거권을 제한당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합니다. 
 
이에 인권위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제한할 수 있는 기본권 영역은 통신 및 면회의 자유에 한정된다”며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의 선거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감독과 안내를 철저히 하고 교통지원 등 투표에 필요한 편의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요양·병원시설에 입원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거권을 제한받아선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한 건데요. 

공직선거법

제6조(선거권행사의 보장) ①국가는 선거권자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② 각급선거관리위원회(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는 제외한다)는 선거인의 투표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거주하는 선거인 또는 노약자ㆍ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 대한 교통편의 제공에 필요한 대책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하고, 투표를 마친 선거인에게 국공립 유료시설의 이용요금을 면제ㆍ할인하는 등의 필요한 대책을 수립ㆍ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정한 실시방법 등을 정당ㆍ후보자와 미리 협의하여야 한다.

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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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거소투표, 여전히 진입장벽 존재해
 
거소투표는 사회적 약자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현행 거소투표 제도는 운영상 한계가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노인요양시설, 장애인거주시설 등 기관·시설에 입원해 있는 경우엔 선거권을 보장받기에 더욱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여있는데요.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시설 거주 장애인 선거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 81.3%가 병원(시설)에서의 투표 경험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먼저 거소투표를 신고하는 절차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기관·시설 내에서 거소투표를 진행하려면 입소 당사자가 선거관리위원회에 거소투표를 신고해야 합니다.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나 기관·시설이 거소투표에 대해 적극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이상 입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요.
 
지난 2022년 인권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 내에서 투표권에 대해 안내받은 경험을 점수로 평가한 결과 43.9점(100점 만점 기준)에 그쳤습니다. 진정을 제기한 A씨 역시 관할 선관위로부터 관련 절차를 안내받지 못해 입원환자에 대한 거소투표를 신청하지 못한 것이었는데요. 
 
A씨가 입원 중이던 병원 측의 대응도 아쉬웠습니다. 병원 측은 “A씨의 경우 주치의 허락 없이 외출이 불가능하고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모든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는 외출·외박이 금지돼 있어 사전투표나 현장투표가 곤란했다”는 의견을 밝혔는데요. 투표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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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공정성도 문제
 
거소투표 과정에서도 절차적 허점이 존재합니다. 

현재 거소투표는 우편으로 이뤄지는데요. 거소투표자는 신고 후 선거일 10일 전까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송부받은 투표용지에 1명의 후보자나 정당을 선택해 기표한 다음 회송용 봉투에 넣어 등기우편으로 발송해야 합니다. 만일 기관·시설 내에 거소투표자가 10명 이상이라면 거소투표를 위한 기표소를 설치해 투표를 진행합니다.
 
이때 참관인의 입회 하에 기관·시설의 사전투표가 진행되는데요. 문제는 공직선거법 제149조 제6항에 따라 참관인 배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관련 규정이 느슨하다 보니 거소투표 유권자의 표가 일반 투표장에서보다 허술하게 관리된다는 우려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지난 2018년 거소투표 현장에서 신분확인 절차, 투표용지 관리, 투표 참관 등 당연한 절차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4년 인권위 조사에서는 거소투표에 참여한 장애인 44명 중 35명(79.5%)만이 참관인이 배석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중간에 표가 유실돼도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기표해도 국가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인데요. 아울러 장애 특성상 기표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다 보니 비밀 선거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지난 2011년에는 한 노인복지센터에서 불법 대리투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원장 유모씨와 사무국장 김모씨 등 4명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상태가 불안한 입소자 16명에게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거소투표를 하도록 한 것인데요. 당시엔 기표소 설치가 30인 이상의 거소투표인이 있는 경우에만 의무였는데요. 유씨 등은 일부러 기표소 설치를 요청하지 않고 우편으로 투표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선관위는 이들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번 4·10 총선을 앞두고도 거소투표와 관련한 부정선거 논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경북 안동시의 장애인시설에서는 직원 B씨가 입소자 19명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허위로 거소투표신고서를 작성해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거소투표는 당사자의 투표 참여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인 만큼 국가는 당사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거소투표 절차에 대한 안내, 대리투표 등의 투표 부정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참정권 보장을 위해 거소투표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이다겸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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