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역 역사 내 1000원 빵집 / 사진=법률N미디어 경예은
신촌역 역사 내 1000원 빵집 / 사진=법률N미디어 경예은

어서 오세요, 모든 빵 단돈 1000원입니다~

 
겨우내 신촌 지하철 역사를 어묵냄새로 가득 채우던 분식집이 사라지고 최근 그 자리에 ‘1000원 빵집’이 들어섰습니다. 이 빵집의 모습은 다른 빵집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사라진 대신 봉지 빵만 한가득 진열돼 있습니다.
 
빵 가격은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도넛과 카스텔라, 심지어 시중에서 약 4000원에 판매되는 소금빵까지 모두 단돈 1000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1000원 빵집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렴한 가격 덕에 출퇴근 시간대 매장에는 빵을 고르는 손님들로 가득한데요. 
  
가게를 운영하는 대표 A씨는 “매일 도매처에서 빵을 4000개 정도 가져온다”며 1000원 빵집 운영의 비결이 박리다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대역 역사 내 1000원 빵집 / 사진=법률N미디어 경예은
이대역 역사 내 1000원 빵집 / 사진=법률N미디어 경예은

◇”월세 미리 낼게요”…경기 불안 속 늘어나는 깔세 매장

공장에서 생산된 양산빵을 취급하는 1000원 빵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요. 박리다매 형태의 이런 빵집들은 이른바 ‘깔세’ 매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A씨 매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다른 1000원 빵집도 바로 깔세 임대매장이었습니다. 
   
깔세란 미리 사용하는 기간만큼의 월세를 한번에 지불하는 형태의 임대계약 방식입니다. 짧으면 보름, 길면 반년 정도의 단기 임대가 대부분입니다. 간단히 말해 짧게 매장을 임대하는 대신 그 기간만큼 임대료를 미리 지불하는 의미인데요. 사글세를 얕잡아 이르는 부동산 업계 은어로 일종의 선납형 초단기임대로 보면 됩니다.
 
깔세는 상가 공실을 단기 임대하는 방식이라 세입자가 원할 때 언제든 철수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보증금이나 인테리어 비용이 필요 없다 보니 초기 비용 부담이 적은데요. 임대인 입장에서도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기 전까지 건물 대출 이자와 관리비 등에 대한 금전적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합니다.
 
역사 내 상가의 경우, 입점을 위해서는 경쟁입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는 한국자산관리공사 공개입찰을 통해 임차인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입찰자 중 최고 가격을 제시한 사람만이 5년 동안 해당 상가를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데요. 깔세 계약 시 입찰 부담 없이 유동 인구가 많은 지하철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깔세 매장 계약에는 위험이 함께 따릅니다. 우선 깔세형 매장은 정식 사업자 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소비자 피해 발생 시 구제가 어렵습니다. 또한 보증금이 없어 월세가 비싼 편입니다. 일반적으로 주변 시세에 비해 20~30%가량 높게 매겨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현행법상 깔세 계약에서는 임대차보호법 적용이 힘든데요. 깔세는 임시 사용 형태의 비정상적 계약으로 분류돼 임차인의 권리 보호가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임차인들은 이중 계약이나 일방적 중도 해지 등의 피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깔세 계약은 리스크가 큽니다. 임차인이 임대 기간 도중 공간에 피해를 줬을 때 해결이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임차인 대부분이 보증금을 마련할 여유가 없어 깔세 계약을 선택하다 보니 보상이 어려울 가능성이 크죠.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 약칭 : 상가임대차법 )

제16조(일시사용을 위한 임대차) 이 법은 일시사용을 위한 임대차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입찰 받은 역사 내 상가를 내어주겠다고 홍보하는 게시글 / 사진=깔세 중개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입찰 받은 역사 내 상가를 내어주겠다고 홍보하는 게시글 / 사진=깔세 중개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10년 만에 다시 등장한 불황 징조 깔세매장

깔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깔세 매장이 이른바 ‘가격 파괴’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소개했는데요.
 
실제로 2010년대 초반부터 국내 유통 업계에서는 가격파괴 바람이 불었습니다. 컵밥, 컵닭 등 2500~3000원선의 ‘불황형 메뉴’가 등장했고 500원대 빵을 파는 저가 빵집이 성행했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당시 깔세 점포의 급증이 자영업 몰락의 한 단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의하면 2015년 상반기 자영업자 수는 전년 대비 10만1000여 명 감소했습니다.
 
사실 지하철 공실률만 따진다면 지금의 깔세 점포 유행은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1~8호선 상가 1547개소의 공실률은 6.9%입니다. 역내 상가 공실률이 31%까지 치솟았던 4년 전과 비교하면 월등하 나은 상황인데요. 

지금의 깔세 매장은 경기 불안과 물가 상승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국내 물가 오름세는 여전히 불안한 모습인데요. 특히 외식물가의 오름세가 무섭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물가 상승률은 3.4%였습니다. 서민 음식 가격 상승률은 △비빔밥(5.7%) △떡볶이(5.3%) △김밥(5.3%) △냉면(5.2%) 순으로 높았습니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정보 종합 포털사이트 ‘참가격’에 기록된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323원인데요. 최근 김값이 10~20% 오르면서 업계는 김밥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자영업 부채 또한 심각한 편입니다. 지난해 2분기 전국 자영업 다중채무자의 대출 잔액은 약 744조원으로 역대 최대를 경신했습니다. 이는 2022년 대비 6.2% 증가한 액수인데요. 다중채무자 수도 177만 8000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의 제과제빵 가격도 양산빵만을 취급하는 깔세 점포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빵값 인상률은 2022년 11.8%, 2023년 9.5%를 기록하며 3%대의 연간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큰 상승 폭을 보였습니다.
 
더욱이 한국의 제빵시장은 소수의 기업이 독점 중이어서 소비자가 하향 조정 가능성이 희박한 실정인데요. 특히 깔세 빵집에서 주로 취급하는 삼립빵은 SPC 소유 브랜드로 현재 SPC 그룹은 국내 제빵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진=법률N미디어 인턴 경예은
/사진=법률N미디어 인턴 경예은

◇물가·자영업 구제책 추진하는 정부

빵 가격은 비단 깔세 매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도 유심히 들여다볼 정도로 빵값 고공행진이 심각한데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 제빵 산업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공정위는 공장형 ‘양산빵’과 직접 구워 파는 ‘베이커리’로 구분된 산업을 각각 조사해 시장별 유통 구조와 가격 결정 요인 등을 파악할 예정입니다. 또한 제빵 산업 내 경쟁 상황을 분석해 담합 여부도 점검할 계획입니다.
 
밀 가격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식품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국제 원재료 가격 변화를 탄력적으로 제품가에 반영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급등했던 밀 가격이 다시 안정을 찾아 이뤄진 조치로 해석됩니다. 정부 요청에 따라 CJ제일제당을 비롯한 삼양사, 대한제분 등의 제분업체는 밀가루 제품 가격 인하를 결정했습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지난 4일 우리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등 5대 시중은행과 상생금융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협약을 맺은 기관들은 신용보증 대출 대환 시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는데요. 
 
또한 5대 은행은 7000억원의 특별출연부 협약 보증을 공급하며 소상공인을 위한 상생기금 조성과 특별보증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나아가 이들 기관은 서울시가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 사업을 실행할 때에도 상호 협력할 예정입니다.
 
불황형 매장인 1000원 빵집은 불경기와 높은 외식 물가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신촌역 1000원 빵집 대표 A씨는 “(양산빵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며 “더운 여름을 나는 것이 1000원 빵집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경예은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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