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부야 거리에 버려진 세븐틴 앨범 / 사진=X 캡쳐
일본 시부야 거리에 버려진 세븐틴 앨범 / 사진=X 캡쳐

일본 시부야 길거리에서 폐기 처분된 K-팝 앨범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SNS에 퍼진 영상 속엔 신곡 CD와 함께 아이돌의 사진이 담긴 책자가 거리에 방치된 채 나뒹굴고 있었는데요. 국내 유명 보이그룹인 세븐틴의 앨범이었습니다. 

버려진 앨범은 발매 3일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이브(HYBE) 산하 레이블인 플레디스 소속의 세븐틴의 새 앨범 ’17 Is Right Here’는 발매 당일에만 약 227만장이 팔렸고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대박 앨범이 팔리자마자 길거리에 대량으로 버려진 겁니다.

인기 앨범이 발매 직후 버려진 것과 관련해 누리꾼들은 날선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넘은 앨범 마케팅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됐을 정도입니다.

4월 25일 기자회견 중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 / 사진=머니투데이
4월 25일 기자회견 중인 민희진 어도어 대표 / 사진=머니투데이

◇’밀어내기’ ‘앨범깡’ 선넘은 K-팝 마케팅
   
디지털 음원으로 노래를 듣는 시대에도 K-팝 실물 음반 시장은 계속해서 몸집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2019년 써클차트 집계 2459만장이던 연간 음반 판매량 TOP 400은 △2020년 4170만장 △2021년 5709만장 △2022년 7711만장 등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1억장을 돌파하며 기염을 토했는데요.

K-팝 실물 앨범의 급격한 판매 증가 이면에는 기획 마케팅이 존재합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구매자 중 CD로 음악을 감상하는 비율은 고작 5.7%에 불과한데요. 서울의 한 대형 음반 매장에서 구매 직후 버려지는 앨범의 비율이 무려 80%에 이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듣지도 않는 아이돌 앨범을 구매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최근 시선을 모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 발언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데요. 민 대표는 “지금 음반시장은 너무 잘못됐다” “랜덤카드 만들고 밀어내기 하고 이런 짓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팬들은 멤버들 기죽을까봐 앨범 사고 또 사고”라며 “시장이 계속 우상승하기만 하면 팬들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연예인도 팬사인회를 계속해야 해서 힘들다”고 덧붙였습니다. 

밀어내기란 초동 판매량 순위를 높이기 위해 유통사가 신작 음반을 대규모로 구매한 다음 기획사가 팬사인회로 이를 소진하는 업계 관행을 의미합니다. 초동 판매량은 발매 후 일주일 간의 앨범 판매량을 말하는데요. 업계와 팬덤에서는 아이돌그룹의 인기를 판가름하는 성적표 정도로 여겨집니다. 아이돌그룹이 소속된 연예기획사는 초동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팬덤을 자극하고 팬들은 초동 집계 기간에 앨범을 집중적으로 구매하며 이른바 충성심을 증명합니다.

가요계 관계자는 “초동 물량을 팔기 위한 팬사인회 일정이 엄청 늘었다”며 “1년간 팬사인회만 92번 개최한 그룹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팬들 사이에서는 앨범 구매량 기준으로 팬사인회 당첨이 확정되는 이른바 ‘줄세우기’ 방식이 기정사실화된 바 있는데요.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러 가려면 똑같은 앨범 수십~수백장을 사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룹 세븐틴의 앨범 '17 Is Right Here' 포토카드 일부 / 사진=X 캡쳐
그룹 세븐틴의 앨범 ’17 Is Right Here’ 포토카드 일부 / 사진=X 캡쳐

문제는 이같은 과열 마케팅이 여러 측면에서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아이돌그룹의 실물 음반 대부분이 듣지도 않고 버려지는 현실인데요. 새로 만들어지는 음반은 그 자체로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요.

지난해 팔린 K-팝 앨범 1억1600만장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약 5800만㎏으로 추정됩니다. 또 앨범의 CD나 PVC 포장재, 코팅종이는 재활용할 수 없는 플라스틱이 대부분입니다. 소각 과정에서 대량의 유독가스를 뿜어내죠.

포토카드를 비롯한 랜덤 구성품은 팬들의 사행심을 자극해 과잉소비를 유도합니다. 포토카드는 당초 팬서비스 차원에서 아이돌 멤버의 셀카를 인쇄해 동봉하기 시작한 건데요. 무작위로 제공되다 보니 점차 앨범 판매량을 올리기 위한 미끼상품으로 둔갑했습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발매된 주요앨범 50종 중 96.9%에 포토카드가 들어 있었고 최대 78종의 포토카드가 제공되는 앨범도 존재합니다.

포토카드가 인기를 끌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앨범을 구매한 후 포토카드만 챙기고 앨범은 그대로 버리는 앨범깡이 횡행하는 건데요. 일본에서 버려진 채 발견된 세븐틴의 앨범은 이런 앨범깡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쓰레기로 전락한 아이돌 앨범…몰래 버렸다간 과태료

팬사인회 응모 경험이 있는 한 아이돌 팬은 “택배박스를 뜯을 때부터 다음 분리수거 날이 언젠지 생각한다”며 “사인을 받을 앨범 1장 빼고는 전혀 쓸모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열성 팬덤에 기댄 앨범 판매량의 대부분이 처치곤란 신세로 전락하고 마는데요. 중고거래나 기부로 연결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생활 폐기물로 배출됩니다.

지난 2011년 일본에서는 한 30대 남성이 걸그룹 AKB48의 앨범 585장을 야산에 버렸다가 쓰레기 무단투기 혐의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앨범을 몰래 버렸다가 적발되면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폐기물 수집을 위해 마련된 장소 외에 도로나 공원에 쓰레기를 버린 경우 쓰레기의 종류나 양에 따라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버려지는 앨범 대부분은 처치 곤란한 폐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앨범을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경우도 있는데요. 무료나눔 명목으로 인도에 앨범을 쌓아뒀다면 어떨까요? 도로법상 무단적치에 해당할 여지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도로를 일시적으로 점용하려면 도로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반하고 노상적치물을 두면 최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폐기물관리법

제8조(폐기물의 투기 금지 등) ①누구든지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나 공원ㆍ도로 등 시설의 관리자가 폐기물의 수집을 위하여 마련한 장소나 설비 외의 장소에 폐기물을 버리거나, 특별자치시, 특별자치도, 시ㆍ군ㆍ구의 조례로 정하는 방법 또는 공원ㆍ도로 등 시설의 관리자가 지정한 방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생활폐기물을 버려서는 아니 된다.

제68조(과태료)③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1. 제8조제1항 또는 제2항을 위반하여 생활폐기물을 버리거나 매립 또는 소각한 자

도로법

제61조(도로의 점용 허가) ① 공작물·물건, 그 밖의 시설을 신설·개축·변경 또는 제거하거나 그 밖의 사유로 도로(도로구역을 포함한다. 이하 이 장에서 같다)를 점용하려는 자는 도로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받은 기간을 연장하거나 허가받은 사항을 변경(허가받은 사항 외에 도로 구조나 교통안전에 위험이 되는 물건을 새로 설치하는 행위를 포함한다)하려는 때에도 같다.

제117조(과태료)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 경우 제1호 및 제2호에 대한 과태료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도로관리청이 속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할 수 있다.
2. 제61조제1항에 따른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물건 등을 도로에 일시 적치한 자

2022년 4월 하이브(HYBE) 소속사 앞에서 앨범 폐기물 전달 시위 중인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 / 사진=케이팝포플래닛
2022년 4월 하이브(HYBE) 소속사 앞에서 앨범 폐기물 전달 시위 중인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 / 사진=케이팝포플래닛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K-팝에 쏟아지는 비난

앨범을 직접 버린 팬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버려질 걸 알면서도 앨범 구매를 부추키는 연예기획사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은 마땅치 않습니다. 

특히 포토카드를 무작위로 끼워파는 상술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요. 지난해 공정위는 이런 행태가 불공정거래행위 중 ‘부당한 끼워팔기’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현장조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환경단체들도 랜덤 포토카드가 소비자기본법 제4조에 어긋나는 상술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뚜렷한 업계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했습니다.

현재 기획사에 가해지는 음반 관련 규제는 플라스틱 쓰레기세, 즉 자원재활용법에 따른 폐기물부담금과 EPR(생산자책임재활용) 분담금이 고작입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연예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801.5톤으로 6년 새 14배나 증가했습니다. 이에 비해 2018~2021년 연예기획사 7곳에 부과된 쓰레기세는 폐기물부담금과 EPR분담금을 더해 약 3억50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앨범 판매로 거둬들이는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인데요. 이와 관련, 환경운동연합 백나윤 자원순환 담당 활동가는 “기업들이 소액의 돈만 내면 해결 가능하다고 여기기 쉽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팬들이 나서 기획사의 앨범 마케팅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기획사들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021년 팬들이 조직한 환경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은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앨범 및 굿즈의 플라스틱 최소화, 수령할 음반 개수를 선택하는 그린옵션 등을 요구했습니다. 팬들로부터 8000여 장의 앨범을 모아 주요 기획사에 돌려보내는 시위도 진행했는데요. 밀어내기나 포토카드 끼워팔기는 현재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는 이와 관련, “실물 앨범이 아예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음반 순위 문제 등 구조적 문제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팬 한 사람이 동일한 음반을 대량 구매하는 시스템을 바꾸고 분리수거 방법을 표기하는 등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플라스틱 쓰레기세 규제 강화 이전에 엔터사들이 ESG 경영 측면에서 도덕적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 약칭: 공정거래법 )

제45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① 사업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로서 공정한 거래를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이하 “불공정거래행위”라 한다)를 하거나, 계열회사 또는 다른 사업자로 하여금 이를 하도록 하여서는 아니 된다.

5.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

소비자기본법

제4조(소비자의 기본적 권리) 소비자는 다음 각 호의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
2. 물품등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장지수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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