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주동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된 모습 / 사진 = 유튜브 '백종원 PAIK JONG WON' 캡쳐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주동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된 모습 / 사진 = 유튜브 ‘백종원 PAIK JONG WON’ 캡쳐

20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의 신상정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유튜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나락보관소’에서 가해자 추정 인물이 한 국밥집에서 일하고 있다고 폭로한 후 해당 식당으로 대중의 관심이 쏠리는데요. 해당 식당은 리뷰 테러와 불법 건축물 신고가 이어진 끝에 결국 폐업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이 식당은 특히 과거 유명 방송인 백종원의 유튜브 방송에서 맛집으로 소개돼 더욱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이어 수입차 판매업체에서 근무 중으로 알려진 또다른 가해자는 하루 만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합니다. 세 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다니던 대기업으로부터 임시 발령 조치를 받았죠.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44명의 가해자 신상을 모두 확보했다고 전한 바 있는데요. 응원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영화 '한공주'(왼쪽)과 tvN 드라마 '시그널'(오른쪽) / 사진 = 네이버 영화
영화 ‘한공주'(왼쪽)과 tvN 드라마 ‘시그널'(오른쪽) / 사진 = 네이버 영화

◇악질 범죄에도 형사처벌 0명…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전말

이 사건은 영화 ‘한공주’, 드라마 ‘시그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사건의 시작과 결말이 모두 충격적이었습니다. 

2003년 당시 울산에서 살던 중학교 3학년 피해자 A양은 인터넷 채팅으로 고등학생 B군을 알게 되는데요. 이듬해까지 연락을 주고 받다가 B군은 A양을 밀양으로 불러냅니다.

들뜬 마음으로 밀양으로 향한 A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B군은 A양을 쇠파이프로 내리쳐 기절시킨 후 그의 선후배 12명과 함께 성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게다가 그 모습을 캠코더와 휴대전화로 촬영해 유포하겠다며 협박했습니다.

끔찍한 범행은 장장 1년동안 이어졌고 범죄 가담자는 44명까지 불어납니다. 가해자들은 10여 명씩 짝을 이뤄 피해자를 단체로 유린했습니다. 직접 가해자 이외에도 망을 보거나 촬영을 하는 등 범죄행위에 연루된 사람은 120명에 달합니다.

A양의 자살 시도를 계기로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범죄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는데요. 그런데 경찰의 수사과정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피해자는 수사 과정에서부터 2차 가해에 시달리게 됩니다. 비공개 수사를 부탁했지만 경찰이 이를 지키지 않았고 언론사들의 경쟁적인 보도로 피해자 신원과 상세한 사건 경위가 노출됩니다.  

경찰의 비인권적인 수사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피의자가 보는 와중 A양에게 범인을 지목하라고 시키는가 하면 성폭력 사건 조사의 기본인 여경 동석 원칙도 외면했습니다. “네가 먼저 꼬리친 것 아니냐” “밀양 물을 다 흐려놓았다” “(가해자들은) 앞으로 밀양을 이끌어갈 애들인데 어떡할거냐” 등 폭언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2004년 경찰에 체포된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들의 모습 / 사진 = MBC 보도화면
2004년 경찰에 체포된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들의 모습 / 사진 = MBC 보도화면

가해자의 가족들은 “너(피해자) 몸조심해라” “딸자식을 잘 키워서 이런 일 없도록 만들어야지” 등 피해자를 오히려 책망하는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그 결과 2005년 밀양 성폭력 상담소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밀양 성폭행 사건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4%에 달하기까지 했습니다. 

A양은 피해 사실이 알려진 탓에 전학을 무려 4번이나 가야 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는 전학을 받아주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학교를 옮기기도 했는데요. 이 곳까지 가해자 부모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A양은 지금까지도 당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반면 44명의 가해자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검찰은 피의자 중 적극적으로 가담한 10명만을 기소했을 뿐입니다. 나머지 가해자 중 20명은 소년원으로 송치됐고 14명은 공소권 상실 처리를 받았는데요. 기소된 가해자들도 최종적으로 소년원에 가거나 봉사활동 및 보호관찰 등 소년범으로서 교화처분을 받아 모두 전과 기록을 피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도 “고등학생으로서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고 인격이 미성숙한 소년으로 교화 가능성이 적지 않아 소년부에 송치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대다수의 가해자가 ‘공소권 없음’으로 풀려난 이유는 피해자의 친부가 합의금을 타고자 법정대리인 자격으로 대신 합의를 했기 때문인데요. 2004년 당시 성범죄는 피해자나 고소권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수사와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로 합의할 경우 대부분 고소가 취하됐는데요. 한편 성범죄 관련 친고죄 및 반의사불벌죄 규정은 2013년에야 사라진 바 있습니다.

N번방 사건 이후 4년만에 부활한 디지털교도소 / 사진 = 디지털교도소
N번방 사건 이후 4년만에 부활한 디지털교도소 / 사진 = 디지털교도소

◇국민 환호하지만 ‘신상 공개’ 사적 제재는 불법

이 사건을 재조명한 유튜브 채널은 엄청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구독자가 무려 10배나 증가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이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적 제재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아울러 사적 제재로 인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실제 이번 폭로는 피해자 의사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유튜브 채널이 피해자 측 동의를 구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사실을 바로잡아달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상담소 측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며 “피해자 가족이 동의했다는 공지를 삭제 정정하고, 오인되는 상황을 즉시 바로잡아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가해자 신상 공개는 피해자 신상 노출로 이어져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설명했는데요. 한민경 경찰대 범죄학과 교수도 “사이트 운영자나 정보를 공개하는 사람이 아니라 피해자 측이 사이다를 느껴야 하는데, 피해자나 유족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이미 다 틀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유튜브 조회수가 수입으로 직결되다 보니 영리적 목적으로 가해자를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고한 피해자가 파생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두번째 가해자 신상이 공개된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그의 여자친구가 모 네일샵 사장이라는 허위사실이 퍼진 건데요. 당사자는 밀양지역 맘카페에 글을 올려 “여자친구가 아니다” “마녀사냥으로 아무 상관 없는 제 지인과 영업에 큰 피해가 되고 있다”며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유튜브 채널에 법적 대응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사적 제재 관련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49%가 적절하다고 답한 반면 부적절하다는 의견은 4%에 불과했는데요. 사적 제재를 옹호하는 이들은 국가의 솜방망이 처벌을 지적하며 신상을 공개하는 식으로라도 죗값을 치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민의 법감정을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제도적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법치주의 관점에서 사적 제재는 위법의 소지가 분명합니다. 헌법 제12조 1항은 법률과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처벌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무분별한 개인정보 노출에 2차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자칫 인민재판처럼 흘러가 인권이 침해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현행법에 신상공개제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도 사적 제재의 근거가 부족한 이유로 제시됩니다. 2010년 도입된 이 제도는 살인, 성범죄 등 특정 중대범죄 사건 중에서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범죄 예방 등 공익상 필요와 잔인성 등의 요건이 충족된 경우 피의자의 얼굴과 성명, 나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올해부터는 중대범죄 신상공개법에 따라 마약범죄, 아동대상성범죄 등이 신상정보 공개 대상 범죄로 추가되며 ‘머그샷’ 공개도 가능해집니다. 법정 제도는 수사기관과 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크지만, 일각에선 비일관적으로 운용돼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적 제재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 기저엔 피해자 회복은 요원한데 가해자 처벌은 미미한 기존 수사와 재판 시스템에 대한 답답함이 깔려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사실적시여도 명예훼손 등 형사처분 위험이 있다”며  “유튜버가 신상 폭로를 이어가는 건 그래도 ‘남는 장사’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짚었습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사적 제재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이를 초래한 사법 체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법무법인 일로 정구승 변호사는 “(밀양) 사건은 수사기관부터 법조계까지 모두 지탄받았어야 했지만 제대로 된 제도 개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적 제재를 막으려면 성범죄 관련 처벌을 높이고 수사도 꼼꼼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또 현행 형사 사법 체계에서 소외되는 피해자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글: 법률N미디어 인턴 장지수
감수: 법률N미디어 엄성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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