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삼성전자 주가가 좋으면 테마주에 투자하겠어요? 대형주가 저 모양이니 몰려드는 거죠.”

국내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A씨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초전도체, 맥신(Mxene), 양자컴퓨터…이름조차 낯선 과학 용어들이 붙었다 하면 주가가 400% 넘게 폭등한다.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서슴없이 거액의 돈을 넣었다 뺀다.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안고서다.

이례적인 폭등세에 놀란 기존 대주주들은 조용히 지분을 판다. 여기저기서 실은 헛된 꿈이라는 뉴스가 나오며 불과 며칠 새 거품이 꺼진다. 투자자들의 희망은 짓밟히고, 피해는 고스란히 뒤늦게 참전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과학기술’만 붙으면 上…개미 왜 열광하나

과학기술테마주는 8월 한 달 동안 증시를 뜨겁게 달궜다. 이들은 주도주가 부진한 틈을 타 증시를 파고들었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수 자체가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 나가는 중에 주도주가 부재하면서 테마주플레이가 이어졌다”며 “올해 주요 테마였던 AI(인공지능), 2차전지 등 신성장산업이 주목받았는데 주도주가 쉬는 구간에 또 다른 신성장 산업을 찾아 투자하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코로나19(COVID-19) 유행 이후 활황이던 주식시장은 현재 넘치는 유동성을 받아줄 곳이 없다. 개인이 한 방을 노리고 자금을 넣었던 투자처는 예전 같지 않다. ‘크립토 윈터'(가상자산시장 침체기)는 끝나지 않았고, 바이오주는 여전히 부진하다. 이런 와중에 2차전지가 올해 상반기 국내 증시를 휩쓸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통상 테마주는 시장을 주도하는 업종 관련 종목이 움직이는데 광풍을 부른 2차전지가 쉬는 공백기에 초전도체, 맥신, 양자컴퓨터가 나타났다”며 “2차전지 열풍의 여파로 새로운 기술 또는 물질에 대한 테마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신성장산업의 실체 여부는 투자자들에게 중요치 않다. 이 센터장은 “현실에 없는 새로운 것이라는 미묘한 매력이 투자자들에게 어필되고 있다”며 “시장 규모, 실적 전망과 같은 실체가 가늠되면 오히려 테마주로 매력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테마 간 순환매도 빨라지고 있다. 기대감만 먹고 자란 종목인 만큼 투자자들도 빠르게 차익실현 혹 손절매를 한 뒤 다음 테마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한 달이란 짧은 기간 안에 ‘초전도체(3주)→맥신(3일)→양자컴퓨터(1~2일)’ 순서로 이어졌다.

텔레방에 떴다 하면 ‘우르르’…테마주 쏠림 언제까지

초전도체 테마주 급등락을 풍자한 밈 /출처=블라인드
초전도체 테마주 급등락을 풍자한 밈 /출처=블라인드

증시의 ‘빅 플레이어’로 성장한 개인투자자가 테마장세를 주도했다. 주가가 폭등한 기업에서 직접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내놔도 폭등세를 멈추지 못했다. 이들은 코로나19(COVID-19) 활황 이후 수급 영향력이 강해졌다. 상반기에 이어진 2차전지 장세가 대표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B씨는 “시장 참여자 연령대가 어려지면서 새로운 것에 더욱 열광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과학테마주는 실체가 없더라도 주가가 오르는 성장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애당초 밸류에이션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인은 기관투자자와 달리 기존 제도권을 불신한다. 그러면서 제도권을 벗어난 투자리딩방, 텔레그램, 유튜브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실시간으로 퍼지는 소식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일각에선 이들 배후에 시세조종세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지만 현재까지 명확히 드러난 바는 없다.

이들은 개의치 않고 오로지 수익률만을 생각한다. 기대수익률은 올라가지만 거시경제가 호전되지 못하며 실제 시장수익률은 하락했다. 그러면서 고위험 종목에 수급은 계속 집중된다.

리서치센터장 A씨는 “이게 다 리딩방, 유튜버 때문이란 얘기도 나오지만 중요한 건 테마주를 대체할 정도로 수익을 볼 수 있는 종목이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점”이라며 “대체할만한 종목이 나왔더라면 테마주에 이 정도로 쏠릴 일도 없다”고 짚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테마주는 테마주로만 남는다는 점이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주도주로 올라오지 못하고 급등세를 단기간에 반납한다.

A씨는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은 결국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해서 돈 벌려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들 입장에선 맞는 말”이라며 “제도권에서 아무리 테마주가 위험하다고 경고해봤자 기대보다 낮은 수익률을 내는 우리 말은 변명으로밖에 들릴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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