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32Gb DDR5 D램
삼성전자 32Gb DDR5 D램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중 패권 전쟁과 반도체 산업은 세계 경제·산업과 한국 반도체 산업·경제에 향후 10년 이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미중 반도체 산업 정책과 중국 반도체 산업 현황,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및 대응전략 등을 살펴본다.

◇ 미중 패권 전쟁 전개 과정

반도체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AI, 빅데이터, 6G, 로봇, 항공우주, 양자컴퓨터를 포함한 슈퍼컴퓨터 활용 및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등 방위산업의 근간이다. 반도체 기반의 첨단 기술은 민·군이 겸용하며, 경제와 국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유로 미중 반도체 갈등은 미중 패권 전쟁의 핵심이며, 시간이 갈수록 격해져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심대해질 것이다.

지구촌은 최근 AI 혁명의 초입에 들어섰지만 관련 산업이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진화한다. AI는 인류의 모든 삶을 바꿀 것이며, AI 경쟁에서 뒤지면 열등 기업, 2등 국가로 전락하기 쉽다. 이 때문에 대다수 기업, 국가가 AI 기술에 사활을 건다. 특히 미중 경쟁이 치열한데, 미국은 중국이 미국 기술(반도체)을 활용해 컴퓨팅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안보를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AI 기술을 방위산업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 반도체 산업 공급망 리스크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1950년대에 관련 기술을 개발한 후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 지위를 확보했다. 1980년대 이후엔 반도체 산업의 중심이 일본, 한국, 대만, 중국 등으로 옮아갔다. 그 과정에서 반도체 가치사슬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미국 팹리스(Fabless) 기업들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분업화가 이뤄졌고, 공급망도 설계, 제조, 소재, 제조 장비 등으로 분화했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재검토를 통해 미국 반도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KIEP,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2021). 첫째, 세계 반도체 제조 능력에서 미국 비중이 하락했다. 1990년만 해도 미국 반도체 생산 능력의 비중이 37%였으나 최근 12%로 떨어졌다. 실제 미국계 비중은 9%다. 반면, 2020년 각각 22%, 15%였던 대만과 중국은 2030년 21%, 24%로 예상된다.

실제로 미국 빅테크 업체들은 자체 설계한 반도체 제조를 해외 파운드리 업체, 특히 대만의 TSMC에 대부분 의존한다. 특히 군사용·우주항공용 반도체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을 미국 내에서 수행하지 못한다. 미국이 공급망에 근본적인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둘째, 반도체 생산 거점과 시장 지배력이 동아시아에 편중돼 지정학적 위험이 크다. 시스템 반도체의 약 90%, 메모리 반도체의 약 75%가 동아시아에서 생산된다. 특히 최첨단 10nm 미만 웨이퍼 가공 공정 반도체 제조 능력은 대만(92%)과 한국(8%)만 갖추고 있어 공급망이 취약하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미국 텍사스 한파, 일본 자동차 반도체 기업 화재, 56년 만의 대만 대가뭄, 일본의 빈번한 지진 및 화산 폭발, 대만·중국 긴장 고조 등으로 공급망 리스크가 계속 커진다. 한두 개 회사 때문에 세계 산업이 마비될 정도다. 실제로 2021년 차량 반도체 공급 차질은 미국 자동차 공장을 멈추게 해 공급망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셋째, 제조 공정 기술 분야의 난이도와 부가가치가 급격히 커졌다. 반도체 제조기술 경쟁은 초미세화·초고속화·초저력화 등으로 가속되는 추세다. 반도체 미세화 공정 기술은 EUV 도입으로 3nm → 2nm → 1nm, 나아가 그 이하까지 진화했으며, 전공정 기술이 한계를 보이면서 최첨단 후공정 기술 개발 경쟁이 각국에서 가속되는 추세다.

한미 정상이 사인한 3나노 반도체 웨이퍼 시제품
한미 정상이 사인한 3나노 반도체 웨이퍼 시제품

(평택=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 세계 최초 3나노 반도체 시제품에 사인했다. 2022.5.20 jeong@yna.co.kr

◇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포괄적 지원체계를 ‘CHIPS’와 ‘APA’라는 2개 법안에 구체화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대폭 키우고, 미국 내에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완벽하게 복구하는 게 목표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에서 산업 지배력을 확장하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서도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책은 제조시설 확대를 위한 보조금 제공, 연구·개발 지원, 인력양성, 중소기업·국제협력 지원 등을 망라한다. 특히 역점을 둔 것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 조성을 위한 대규모 지원금 및 투자 인센티브다. 그 결과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가 미국 내 공장 건설 투자를 확정했고, 미국의 인텔도 10나노 미만 제조 공정 건설을 추진 중이다. 그밖에 미국 곳곳에서 반도체 생산 클러스터가 건설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 강화를 위해 동맹국 협력도 강조한다. 대만, 일본, 한국, 네덜란드와 함께 대중국 제재 협력을 공고히 하며, QUAD(미국·인도·호주·일본 안보 협의체), 한국 등과 반도체 관련 상호 투자를 확대하거나 미국 투자를 독려한다.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확보하려는 의지도 강하다. 첨단 후공정 패키징 제조 기술 프로그램 신설에 25억 달러를 배정했고, 국가반도체기술센터 신설 확정, 국방 전략 반도체 연구·개발 프로그램 지원 등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 확보에 힘을 쏟는다.

◇ 중국 반도체 산업 현황

중국 반도체 시장은 2010년 570억 달러에서 2020년 1천434억 달러로 성장했다. 중국 반도체 굴기는 설계-공정-제조-응용을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반도체 지급률은 2022년 17%에 그치며, 수입액은 10년간 2배가 됐다.

분야별로 Fabless는 로직 칩, 아날로그, 광학센서, 전력 반도체 등 저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국산화 대체가 가속됐다. 3년 전보다 인건비가 3배 올랐지만 설계 능력은 변하지 않아 생존력을 갖춘 기업 위주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고부가가치 부문 설계 기술도 한계가 있다. 알리바바가 5nm, 바이두가 7nm 기반의 CPU 개발에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정부 보조금이나 자본투자가 없으면 생존이 어렵고, 설계를 하더라도 해외 파운드리(삼성 또는 TSMC)를 써야 하는 문제가 있다.

파운드리의 경우 중국의 매출 기준 글로벌 점유율은 약 7%다. 대표 기업인 SMIC는 2021년 기준 28nm 이하 공정 매출액 비중이 15%, 14nm 이하 공정 매출 비중이 1.3%로 추정된다. 2022년 7nm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양산 능력은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메모리의 매출 기준 글로벌 점유율도 3% 미만이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국산화는 2016년 YMTC(창장메모리), JHICC(푸젠진화), CXMT(창신메모리) 등이 설립되며 본격화했다. 이중 푸젠진화는 미국 Micron의 기술도용 문제로 생산이 중단됐고, CXMT는 2018년부터 19nm 공정의 8기가 DDR4 제품을, 2019년부터 8기가 LPDDR4 제품을 생산하며, 12인치 웨이퍼 생산 능력을 월 6만 장에서 12만 장 규모로 늘리는 중이다. 하지만 미국의 규제로 FAB 건설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 설립된 성웨이쉬는 선전시 국유기업으로 12인치, 28nm 공정의 DRAM 레거시(범용)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월 14만 장이 목표이며, 2024년 1분기에 시제품이 생산된다. 또 NAND는 YMTC가 2020년 128단 양산에 성공했고, 232단 기술도 개발했다고 알려졌으나 양산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세계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결정하는 큰 변수지만 불확실성도 크다. 우선은 미국 대중 제재의 목표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를 전부 붕괴시킬 것인가? 중국 생태계를 미국의 동맹 공급망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할 것인가? 이 경우 반도체 표준은 극단적으로 이원화된다. 아니면 중국 반도체 생태계는 살리되 첨단 반도체 발전만 억제할 것인가?

미국의 목표는 후자로 판단된다.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최대 시장인 중국의 붕괴를 원할 리 없다. 만약 중국 반도체 산업 전체를 붕괴시키는 게 목표였다면 미국의 제재 전후로 SMIC 공급망이 크게 변했어야 한다. 그러나 2016년 램리서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ASML에서 장비를 조달하던 SMIC는 2020년에도 이들 기업에서 많은 장비를 조달했다(KIEP, 동저).

둘째는 지속성이다. 동맹국과의 협조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올해 미국 대선에서 정권이 공화당으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CHIPS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거의 만장일치로 제정했으니 공화당이 당선돼도 골격이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당선되면 동맹국과의 협력은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과의 관계는 그런대로 유지되겠지만 유럽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셋째는 정도와 범위다. 현재 제재를 받는 중국 반도체 기업과 기술 현황은 다음과 같다.

미국 Entity List에 추가된 중국 주요 반도체 기업
미국 Entity List에 추가된 중국 주요 반도체 기업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제공]

미국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미국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제공]

나아가 가장 중요한 제재는 네덜란드 ASML사의 노광장비 EUV이며, 조만간 DUV ArF 이머전 장비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의 주요 장비도 규제 대상이며, 이 또한 중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적이다. 이처럼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핵심 장비 및 소재가 중국 수출규제 대상으로 지속된다면 중국 반도체 산업 기술은 당분간 발전하기 어렵다.

이로써 현재 대중국 제재는 중국 반도체 기술력 향상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앞으로 28nm 이상의 레거시 부문으로 제재를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이 부문의 자립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큰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향후 28nm 이상 레거시 부문에서도 미중 전쟁이 치열해진다.

현재 중국이 성장세나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28~45나노 공정(19%), 45나노 이상(23%), 아날로그 반도체(17%)인데, 이들은 산업 수요로 인해 꾸준한 캐시카우가 가능하다(반도체 삼국지, 권석준). 그러나 45나노 이상은 막기 힘들고, 28~45나노 공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지만 이 또한 시간이 갈수록 미국이 막기 힘들 것이다.

◇ 중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한계와 위협

중국 반도체는 미국의 제재가 지속되는 한 자립에 실패할 것이다. 파운드리의 경우 10nm 이하 EUV 노광기 수입이 금지됐으며, 이와 관련된 미국, 일본 주요 장비도 수입이 금지됐다. 그런데 중국의 제조 장비 자급률은 10% 내외여서 첨단 주요 장비를 국산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선 ASML의 10nm 이하 EUV는 네덜란드의 ASML과 독일의 자이스를 중심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30년간 개발한 장비인데, 중국이 이를 기술 탈취로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5대 전공정 장비 회사들의 최첨단 미세공정 장비도 국산화가 어렵고, TSMC의 5나노 이하 공정 파운드리도 따라잡기가 어렵다.

DRAM 반도체 자급률도 10% 정도다. 현재는 19nm 양산에 머물러 삼성, 하이닉스에 5년쯤 뒤진다. CXMT는 허페이 2기 Fab을 완공했으나 미국과 일본의 규제로 가동이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중국의 DRAM 반도체는 미국이 정한 19nm 한계를 넘어서기 힘들다.

NAND도 마찬가지다. YMTC가 2020년 4월 128단 NAND 개발과 양산 후 232단 양산을 앞둔 상태에서 애플의 아이폰 벤더에 추가될 예정이었으나 미국 정부의 제재로 보류됐다. 만약 애플 벤더로 진입했다면 삼성, SK하이닉스와의 격차가 급격히 줄고 몇 년 뒤엔 오히려 앞설 수 있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최대 약점 중 하나는 자급률이 2%인 자동설계 소프트웨어(EDA)다. 이 분야는 미국기업 시놉시스, 케이던스, 지멘스가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 제재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EDA는 중국 반도체 설계 회사가 사용할 수 없어 치명적이다(반도체 삼국지, 권석준). 그러나 28nm 이상 레거시 부문(특히 장비)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국내 수요를 바탕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최대 강점인 해외 전문 인력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의 대다수 경영진은 미국에서 석, 박사를 마친 글로벌 엔지니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대만의 엔지니어들을 연봉 3~4배에 무차별적으로 영입해 기술을 도입한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그동안 국가 주도로 성장했다. 일례로 화웨이는 2022년 중국 정부로부터 9억4천800만 달러(약 1조2천300억 원)를, SMIC는 지난 3년간 68억8천만 위안(약 1조2천500억 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이들 기업엔 폭풍이 몰아칠 것이다. 원래 반도체는 투기적인 산업이다. 기술 주기가 매우 빨라 현금 회전율이 높아야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한 기술 세대에서 매몰 비용의 2배는 벌어야 다음 세대 투자금과 다다음 세대 연구·개발비가 확보된다. 이런 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반도체 삼국지, 권석준).

안타깝게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런 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적이 없다. 대부분은 자본 잠식 상태이고, 미국 제재로 한계기업도 급증한다. 기댈 것은 정부 지원뿐인데, 이는 경제 여건과 정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중국 파운드, 메모리 업체들의 기술 격차
중국 파운드, 메모리 업체들의 기술 격차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제공]

◇ 중국 경제와 정부 역량

중국 정부는 40여 년간 집중적인 자원 배분을 통해 가전·LED·OLED·스마트폰·자동차·전기차·태양광 등 신재생 산업, 이차전지·AI·항공우주 첨단산업 등을 육성했다. 이런 특징은 중국의 힘이자 단점이다(한·중·일 경제 삼국지, 안현호).

반도체 산업에도 이런 특징이 적용될까? 시진핑 정부는 2013년 ‘중국제조 2025’를 선언하고 반도체 굴기를 내세웠으며,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 국유펀드 1기 1천200억 위안, 2기 2천40억 위안을 조성했고, 지방정부와 민간은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을 반도체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현재 자급률은 17% 수준이며, 전망도 어둡다.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이 자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게다가 시진핑 정부는 독재 체제에서나 볼만한 모습을 자주 노출한다. 부동산 구조조정, 코로나19 등 골치 아픈 문제는 축소·은폐하고, 시 주석 찬양에 몰두한다. 관료(공산당 간부, 특히 지방 정부)와 기업 간의 고착도 문제다. 국유펀드 조성 과정에서도 이들의 부패가 잇따르며 돈이 줄줄 샜다. 반도체 산업 자립에는 효율적인 정부의 뒷받침이 중요한데 현 정부에선 어려울 것 같다.

중국 정부의 재정도 열악하다. 지방 정부의 열악한 지방채 만기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3조6천500억 위안으로 연 31.5% 증가하며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대만중화경제연구원, 2023. 10). 더 큰 문제는 일종의 ‘그림자 금융’인 중국 지방정부금융플랫폼 부채인데, 규모가 2022년 말 약 46조 위안에 달한다(중화경제연구원).

지방 정부 부채는 상당수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채무다. 만기가 짧고 금리가 높으며 상환 출처도 불확실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미국 골드만삭스는 중국 지방 정부 부채가 중국 금융 시스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2023.7). 중국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면 중앙 정부가 해결해야 하니 반도체 기업들까지 지원하긴 힘들어진다.

그러나 28nm 이상의 레거시 부문은 비약적인 발전이 예상된다. 거대한 수요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생산국이다. 스마트폰의 75%, 태블릿 PC의 80%, 노트북의 90%, 디지털 TV의 50%, 디스플레이 패널의 90%, 통신용 셋톱박스의 60%를 생산한다.

이를 배경으로 레거시 반도체 기업들이 급성장한다. 업계에 따르면 선전시에서는 반도체 기업에 대해 정부가 비용의 90%를 지원해주니 돈을 못 벌면 ‘바보’로 불린다. 중국 레거시 기업들이 이런 속도로 성장한다면 10년 내에 세계를 석권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언젠가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면 중국 반도체 산업은 레거시를 바탕으로 첨단 부문까지 폭발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과 미래

한국의 성장 동력은 제조업이 기반이다. 세계에서 전 부문 제조업을 갖춘 나라는 한국, 중국, 일본, 독일뿐이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 IT 부문과 자동차 부문이 전체 제조업의 약 50%를 차지하니 이 두 부문이 중요한 기둥이고, 특히 반도체 산업이 중요하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기회다. 동시에 중국 반도체 시장은 한국에 최대 시장이다. 삼성은 시안에 대규모 NAND 공장이 있고, 하이닉스는 우시와 대련에 DRAM과 NAND 공장이 있다. 이곳에 첨단 장비를 투입해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미국 규제로 진퇴양난이다. 한마디로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는 중요하다.

한국은 이 격랑 속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고,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잠재력 또한 무서우니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메모리 부문은 삼성전자의 초격차 전략으로 한국이 1위를 유지할 것이다. 메모리 중 DRAM은 삼성, 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과점 상태를 깰 만한 기업이 당분간은 없다. 유일한 가능성은 중국인데, 미국의 제재로 불가능하다. NAND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파운드리는 대만의 TSMC가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2위인 삼성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심지어 인텔이 미국 정부의 지원하에 혁신하고 있어 2위도 내어줄 가능성이 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공정기술의 최대 관심은 첨단 후공정 기술이다. 전공정 기술이 2nm 이하로 초미세화되면서 기술 개발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수율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 첨단 후공정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다.

후공정 분야는 기술 개발 비용이 전공정보다 저렴하며 표준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HBM과 같이 메모리 분야도 고객 맞춤형 추세로 가면서 파운드리화가 예상된다. 첨단 후공정 기술에서 가장 앞선 기업이 TSMC다. 삼성 파운드리와 TSMC의 격차가 커진 이유 또한 후공정 기술력 차이다.

그럼에도 삼성이 전공정 기술 부문을 우선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업 문화다. 삼성은 메모리로 돈을 벌어 파운드리에 투자했다. 메모리는 전공정이 중요하므로 후공정을 경시하는 문화가 글로벌 추세와 어긋난 것은 아닐까? 정부와 업계가 하루빨리 후공정 분야 발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면 좋겠다.

한국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도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대부분이 레거시 분야를 생산하며, 첨단 미세공정 분야도 국산화에 그치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는 미국과 일본, 반도체 소재는 일본과 유럽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이들과 경쟁할 반도체 기업이 한국엔 거의 없다. 게다가 지금처럼 삼성, 하이닉스의 세트 업체와 소·부·장 업체의 종속 관계가 지속된다면 앞으로도 글로벌 1위는 나오긴 어렵다.

반면, 중국의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은 레거시 분야에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특히 장비 분야가 두드러진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장비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 반도체 소·부·장 업체들은 샌드위치 신세가 되기 쉽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622조 투입 반도체 클러스터
622조 투입 반도체 클러스터

(용인=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2047년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이 622조원을 투입하는 경기도 남부 일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에 정부가 지원을 강화한다.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부지. 2024.1.15 xanadu@yna.co.kr

◇ 한국 반도체 산업의 대응 방향

첫째, 중국 반도체 산업 관련 정책 및 현황 파악을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정책은 외부에 즉시 알려진다. 그러나 중국의 대응은 사실상 비밀에 부쳐진다. 따라서 우선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분야별·기업별 현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파악하기 위한 조직과 기능이 한국엔 없으니 모니터링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둘째, 파운드리 부문(첨단 후공정 기술 분야) 집중 육성을 위한 중·장기 계획 수립이 중요하다. 앞에서 밝혔듯 첨단 후공정 기술의 중요성이 커졌다. 특히 AI 혁명이 진전될수록 메모리 사용량이 급증할 뿐 아니라 맞춤형 메모리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역량(첨단 후공정 기술)을 강화하고 생태계도 보강한다면 AI 시대를 맞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인재들의 국내 유치가 절실하다.

국내 후공정 기술에 특화된 연구센터 설립도 조속히 추진해야 하며, 첨단 후공정 기술 관련 소·부·장 기업에 대한 지원책도 강구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 내에 인재 양성과 기초연구를 위한 연구·개발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

셋째, 반도체 소·부·장 기업 육성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이 시급하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해당 분야에서 유망한 기업의 경우는 산학연과 협력해 10년 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소·부·장 육성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반도체 삼국지, 권석준). 네덜란드에서는 ASML뿐 아니라 약 30개의 세부 분야 전문 기업이 다수 존재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소·부·장을 공급한다. 첨단 하이테크 산학연 클러스터의 결과물이다. 한국도 단편적인 지원에서 벗어나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넷째, 미국 주도의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응해야 한다. 최근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과 함께 세계 반도체 산업 공급망을 다시 짜려는 구상을 한다.

이 와중에 미국뿐 아니라 일본, 한국까지 중국과 디커플링 현상이 뚜렷해졌다. 미국의 경우 중국과의 수출입 규모가 급감하는 중이며,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도 급감하고, 미국 기업의 중국 탈출은 급증세다. 일본, 한국도 무역 규모와 직접 투자가 계속 감소할 것이고,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의 배경에는 중국의 사회주의 정책 강화, 자율·개방 정책 후퇴 및 국산화 정책의 대폭 강화 등도 있다.

중국이 반도체를 필요로 하므로 관련 기업들은 당분간 큰 영향이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의 최대 시장이므로 대안이 필요하다. 중국에서 나온 기업들은 대부분 아세안과 인도로 이전한다. 중국 기업들도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아세안 진출에 적극적이다. 원래 아세안의 터줏대감은 일본인데, 이로 인해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한국 기업들도 아세안, 인도와 각별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CHIP4도 미국, 일본, 대만이 좀 더 긴밀한 느낌이다. 한국도 소외되지 않아야 하며, 특히 반도체 분야는 일본과 더 긴밀해져야 한다. 일본은 소재·장비 분야의 절대강자다. 그런데 소재 업체 중 한국으로 이전하고 싶어 하는 업체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을 유치한다면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강화될 것이다.

지금까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분업구조가 철저했다. 그러나 앞으론 안정성을 내세우며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생산시설을 구축할 것이다. 한국도 입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유치 경쟁에서 뒤지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차세대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한 기초과학 투자에 힘을 기울여야 하며, 핵심 반도체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안현호 전 무역협회 부회장

안현호
안현호

지식경제부 1차관, 무역협회 부회장, 한국우주항공(KAI) 사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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