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분조위 분쟁조정 결정 사례 공개

통장에 적어준 ‘2.6%’ 확정 금리로 오인

암 보험금 맡기려다 가입한 고객은 60%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 피해자들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투자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 피해자들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고 투자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70대 노인에게 확정 금리가 보장된 예금인 것처럼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이 손실의 3분의 2가량을 배상하게 됐다. 암 보험금을 정기예금에 넣으려 온 고객에게 관련 상품을 가입하게 한 은행 역시 손실의 절반 이상을 물게 됐다.

금융감독원은 14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홍콩 H지수 ELS 관련 분쟁조정 결정 방안을 공개했다. 전날 금감원은 금융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홍콩 H지수 ELS를 판매한 5개 은행과 각 거래 고객 사이의 분쟁 사안 중 대표사례 5건을 선정해 논의했다.

분조위는 각 투자 손실에 대한 배상비율을 최저 30%에서 최고 65%로 결정했다. 이는 금감원이 지난 3월에 발표한 홍콩 H지수 ELS 분쟁조정 기준안에 따른 것이다.

가장 높은 65%의 배상비율을 인정 받은 투자자는 70대 고령자였다. 은행이 해당 고객에게 주가연계신탁(ELT) 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 성향을 부실하게 파악하는 등 공격투자자로 분류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해 설명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ELT는 은행에서 ELS 상품을 신탁으로 담아 판매하는 상품이다.

특히 통장 겉면에 확정 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하고 고령자 보호 기준 등을 준수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투자 자금 원천이 주택청약저축 해지 자금 등이고, 신탁통장 겉면에 2.6%라는 수치가 기재된 점 등을 고려해 정기예금 가입 목적이 인정된다고 봤다.

암 보험 진단금을 정기예금에 예치하러 온 40대 고객에게 ELT를 권유한 은행 역시 손실액의 60%를 물게 됐다. 투자금이 향후 암 치료 목적으로 사용 예정이던 암 보험 진단금으로 단기 내 확실한 사용처가 정해진 자금이고, 신청인이 가입 당일 처음에는 대출과 예·적금 상담 창구를 방문한 사례였다.

55%의 배상비율이 결정된 금융소비자는 70대였다. 은행이 투자 성향 분석 시 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답변하도록 유도하고 손실 위험 등을 왜곡해 설명했으며,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한 케이스다.

똑같이 손해액 중 55%의 배상비율이 책정된 또 다른 고객은 60대였다. ELS 투자 경험이 없는 고객의 투자 성향 분석 내용이 객관적 상황과 다른데도 가입이 진행됐고, 왜곡된 자료를 활용해 손실 위험을 오인하게 설명했다고 금감원은 지적했다.

이밖에 은행이 투자 목적과 재산 상황, 투자 경험 등 정보를 실질적으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문자로 ELT 가입을 권유하고 손실 위험을 누락해 설명한 투자자에 대해서는 손해액 대비 30%의 배상비율이 책정됐다.

분조위는 ELS 분쟁조정 기준에 따라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 모든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설명의무 위반사항 20%와 개별 사례에서 확인된 적합성 원칙·부당권유 금지 위반 사항을 종합해 기본 배상비율을 산정했다.

아울러 민원조사 등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각 사안별 ELS 분쟁조정 기준에서 제시한 예·적금 가입 목적, 금융취약계층 해당 여부 등 가산 요인과 ELS 투자 경험, 매입·수익 규모 등 차감 요인을 구체적으로 적용해 최종 배상비율이 정해졌다.


분쟁조정은 신청인과 판매사 양측이 조정안을 제시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는 경우 성립하게 된다. 나머지 조정 대상에 대해서는 ELS 분쟁조정 기준에 따라 자율조정 등의 방식으로 처리된다.

분쟁조정 관련 은행들은 앞서 발표된 금감원의 ELS 분쟁조정 기준을 이미 수용, 자율배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분조위 결정을 통해 각 은행별, 판매기간별 기본 배상비율이 명확하게 공개됨에 따라 금융소비자와의 자율조정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금감원은 기대하고 있다.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초와 같은 수준의 홍콩 H지수가 지속될 경우, 이를 기초로 판매된 ELS 가운데 올해 만기를 맞는 상품에서만 연간 5조80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이 불거질 수 있다는 추산이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삼은 지수 등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된다. 통상 6개월마다 기초자산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회를 주고, 만기 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기준을 밑돌면 통상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향후 은행과 금융소비자 간의 자율조정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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