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2위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구성원 역할 무시 ‘정경유착’만 부각

이통사업 진출 특혜 의혹…”오히려 불이익 감수하며 진출”

사우디 석유도입으로 이뤄낸 유공 인수까지 ‘색안경’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3년 6월 1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열린 ‘2023 확대경영회의’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SK

“개인적인 일로 SK구성원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SK와 국가경제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도록 묵묵하게 소임을 다하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임시 소집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자신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의 이혼소송을 둘러싼 혼란 상황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이혼소송 2심 선고공판에서 노 관장에게 재산 1조3080억원을 분할하고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지 나흘 만에 이뤄진 공식 입장 표명이었다.

최 회장은 “이번 판결로 지난 71년간 쌓아온 SK 그룹 가치와 그 가치를 만들어 온 구성원들의 명예와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어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2심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나아가 최 회장은 이날 SK그룹 사내 포털망에 ‘구성원에 전하는 편지’를 올리며 임직원들에게 직접 사과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국내외 사업 현장에서 촌음을 아껴가며 업무에 매진하는 구성원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면서 “개인사에서 빚어진 일로 의도치 않게 걱정을 안겨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5년 최 회장이 혼외 자녀의 존재를 공개하고 이혼 의사를 밝힌 이래 계속돼 왔지만 이번 2심 판결은 SK 구성원들에게는 유독 심각한 심리적 타격을 줬다.

재산 분할시 지배구조 균열에 대한 위기감은 둘째 치고라도, SK가 국내 2위 대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선배들과 자신들이 쌓아온 노력, 그리고 경영진의 전략적 판단은 무시된 채 ‘정경유착’만 부각되는 상황이 구성원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모욕이라는 반응이다.

SK의 주력 사업인 이동통신과 정유‧에너지 사업이 이전 정권의 특혜에 따른 것이라는 비난에 대해서 SK 구성원들은 큰 억울함을 표했다. 특히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은 2심 판결에서 직접 언급되기까지 했다.

SK는 섬유‧필름 사업 주력으로 하던 선경을 모태로 적극적인 M&A(인수합병)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다. 삼성, 현대 등 다른 대기업들이 맨주먹으로 사업에 진출해 성과를 낸 것과 달리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커나갔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SK를 저평가하는 시각도 있는 게 사실이다.

“교복, 비디오테이프나 만들던 회사가 누구 덕에 저렇게 컸는데…” 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그런 비아냥에는 SK의 M&A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전제돼 있지 않다. 일단 옛 선경이 재계 10위권 수준에서 5위권 이내로 진입하는 가장 큰 도약의 계기가 된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는 노 전 관장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무관하다. 최규하 전 대통령 시절인 1980년 유공 지분의 50%를 보유했던 미국 걸프가 철수를 결정하며 유공 민영화가 추진됐고,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그해 말 선경의 유공 인수가 이뤄졌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그보다 한참 후인 1985년 처음 만나 1988년에 결혼했다.

물론 최규하 정부 때도 신군부가 각종 이권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유공 민영화는 단순히 정권이나 신군부와의 유착 관계로 결정될 사안은 아니었다. 더구나 노 전 대통령 집안과 사돈관계를 맺기 이전의 선경은 재계 서열상 한참 위에 있던 다른 대기업들보다 신군부와의 연줄이 두터운 편도 아니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1986년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장관과 면담하는 모습. ⓒSK

유공 인수 경쟁의 결정적 요소는 안정적인 원유 수급 능력이었다. 당시 2차 석유파동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비산유국이자 개발도상국인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이 아쉬울 때였기 때문이다.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인맥이 이때 빛을 발했다. 미국 유학 시절 맺은 사우디아라비아 왕족과의 친분을 통해 사우디에 공을 들여온 최 선대회장은 사우디 국영석유광물공사와 장기 원유공급 계약을 맺음으로써 유공의 주인으로 낙점 받았다. 나아가 ‘알 사우디 은행’을 통해 1억 달러의 차관까지 끌어왔다.

SK의 이동통신사업 진출 과정에 대해서도 오해가 많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8월 SK의 전신인 선경이 제2이동통신 민간사업자로 선정됐던 것은 맞다. 이때 본격적으로 이동통신사업을 시작했더라면 정경유착 의혹에 대한 해명은 더욱 힘들어졌을 터다.

하지만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 등이 대통령 사돈 기업에 사업권을 부여했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최종현 선대회장은 사업권을 일주일 만에 반납했다. 그러면서 “오해 우려가 없는 차기 정권에서 사업성을 평가받아 정당성을 인정받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SK텔레콤의 전신인 선경텔레콤의 출범은 선경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을 ‘특혜’라고 비판하던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후에야 이뤄졌다.

심지어 선경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당초 선경은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신규 사업권을 획득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으나, 앞서 겪었던 공정성 시비가 다시 불붙을 것을 우려해 그보다 더 큰 금액이 소요되는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선회했다. 공개 입찰에서 승리한 선경이 한국이동통신 지분 23%를 인수하는 데 들인 돈은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인 4721억원이었다.

3일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도 SK 일부 CEO들은 당시 상황을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거론하며 법원이 이동통신사업 진출 특혜를 언급한 데 대해 원통해했다고 한다.

최태원 회장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지금의 혼란이, 그리고 SK를 향한 세간의 비난이 그의 ‘개인사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아래와 고의성 여부를 떠나 ‘선의의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 ‘개인사’와 관련된 재판이 앞으로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로 끝맺음될지 모를 일이다. 남의 개인사에 누가 잘했다느니 못했다느니 훈수를 두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만, 국영 기업의 낡은 정유설비를 가져다 세계적 에너지기업 SK이노베이션으로 성장시킨 역대 구성원들의 노력과, 주인 없는 반도체 회사를 인수해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 세계 1위 기업 SK하이닉스로 키워낸 리더의 경영적 판단이 무시된 채 모든 성과가 ‘정경유착’이니 ‘처갓집 덕’으로 치부되는 상황은 밖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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