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대의 활동·국회 독립성 보장 취지이지만

비리 연루 동료 의원 감싸는 ‘보호막’으로 변질

21대 국회 체포안 부결 민주당 4건…국힘은 0건

“특권 포기” 약속도 번복한 이재명에 분노 상승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지난 9월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지난 9월 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헌법 제44조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으며, 비회기 중 체포 또는 구금됐어도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석방된다는 것이다. 취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대의 활동을 보장하고 국회의 독립성을 지키자는 것이었다.

‘불체포특권’은 꽤 오래된 제도다. 영국이 1603년 의회특권법을 제정한 이후 민주 정치 체제를 표방하는 세계 각국이 헌법으로 수용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 헌법에 불체포특권을 규정했다. 이후 9차례 헌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도 불체포특권 조항을 삭제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과 석방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불체포특권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건, 불체포특권이 비리에 연루된 동료 의원을 감싸는 보호막으로 변질되서다. ‘방탄 국회’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방탄 국회라는 말이 처음 우리 정치권에 등장한 건 1998년이다. 15대 대선 당시 불법 대선자금 모금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당시 이신행 한나라당 의원을 보호하고자 당이 4차례나 임시국회를 열면서 이 용어가 생겨났다.

같은 해 경성그룹 비리 등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김윤환·황낙주·오세응·백남치·서상목·김중위·박관용·조익현(한나라당), 정호선·김운환(국민회의) 의원에 대해서도 방탄국회가 이어졌다. 특히 ‘서상목 방탄 국회’는 6차례 열렸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6월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식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DB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6월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식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DB

그런데도 정치권은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겠다는 공언을 심심치 않게 하고 있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소속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을 연이어 부결시킨 게 발단이 됐다.

역대 총 70건의 체포동의안 청구가 있었고, 그중 실제로 표결에 부쳐진 건 38건, 가결이 된 건 18건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총 9건의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왔다. 정정순 전 민주당 의원,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이상직 전 의원,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 국민의힘을 탈당한 하영제 의원 등 총 4명의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문제는 위례·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등이 제기된 이재명 대표를 ‘방탄’하기 위한 목적으로, 민주당이 자당 소속 및 출신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잇달아 부결시킨 점이다.

사업가로부터 수천만 원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청구된 노웅래 의원의 체포동의안,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민주당 출신으로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잇따라 부결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 등이 지난 9월 21일 국회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부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자 등이 지난 9월 21일 국회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부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재명 방탄 국회’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 대표는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다. 그는 20대 대선 후보 시절 10대 공약으로 불체포특권 폐지 등을 내걸고, 국회에 입성하기 전인 지난해 5월에도 “불체포특권을 제한하자는 것에 100%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표는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의 체포동의안 청구가 전망되는 지난 9월 무기한 단식 투쟁에 나서면서 ‘방탄 단식’ 논란을 자초했다.


더욱이 그는 장기간 단식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와중에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명백히 불법 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부결을 호소했다.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스스로 깬 이 대표를 향한 분노는 두 번째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가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최근까지도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당내에서도 “김은경 혁신위원회 1호 안건이 뭐였나. 불체포특권 포기였다. 이 대표부터 그렇게 하셨느냐”(홍영표 의원), “본인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으면 지켰어야 하는 것 아니냐. 상황이 바뀌었다고 안 지켜도 된다면 공당의 자격이 없는 것”(윤영찬 의원)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방탄 국회가 이어지고, 불체포특권 포기에 대한 번복이 이뤄지면서 정치권에 대한 환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 6월 26~27일 불체포특권과 관련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61.7%가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치적 탄압을 방어하기 위해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9.4%에 그쳤다. 불체포특권 포기 찬성은 보수층(70.1%)에서 압도적이었고, 중도층(64.8%)과 진보층(53.2%)에서도 과반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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