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쟁의 14건 중 ‘일부 인용’ 달랑 1건뿐…탄핵도 전부 기각·각하 ‘헛심’

‘정치의 사법화’ 심화에 비판·자성론…’국민 재판받을 권리 침해’ 지적도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선고
헌법재판소 권한쟁의 심판 선고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유남석 전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작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위헌 제청 및 권한쟁의 심판 선고 시작에 앞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국회의원들이 정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로 달려가는 일이 늘면서 국회가 5년간 헌법소송에 지출한 세금이 5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14일 연합뉴스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는 2019년∼2023년 국회의장 또는 국회 상임위원장을 당사자로 하는 헌법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총 5억5천958만원을 지출했다.

이는 대부분 국회의장·국회 상임위원장을 상대로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을 수행하기 위해 지출한 변호사 수임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소추위원으로 참여하는 탄핵심판을 위한 변호사비도 포함된다.

헌법소송은 민사·행정소송 등과 달리 인지세·송달료 등 소송비용을 당사자가 부담하지 않는다.

국회는 2019년 총 1천100만원을 수임료로 지출했다. 당시 검찰개혁법, 선거법 등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운영, 쟁점 법안의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 등을 주제로 6건의 권한쟁의심판이 무더기로 청구됐으나 전부 기각·각하됐다.

국회 상임위원회 배정과 관련해 2건이 청구된 2020년에는 2천365만원을, 임성근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탄핵심판이 제기된 2021년에는 1억198만2천원을 지출했다.

국회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해 2건,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출석정지 관련 1건이 청구된 2022년에는 1억4천300만원을 썼다.

작년에는 이른바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소추안 철회에 관한 권한쟁의심판 3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 총 4건이 청구됐고 총 2억7천995만원을 지출했다.

각각의 입장
각각의 입장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오른쪽)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한결의 김진한 변호사가 작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 법률안'(노란봉투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선고 뒤 각각 입장을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회가 헌법소송에 지출하는 비용은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회 측은 다만 “심판 청구일과 대리인 선임 계약 시점 차이로 인해 헌재의 사건 접수 연도와 비용의 실제 지출 연도상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착수보수와 성공보수를 나눠서 지급하기 때문에 여러 해에 걸쳐 지출이 발생하기도 한다.

국회는 개별 사건에 지출한 수임료는 로펌(법무법인 또는 조합)의 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정치 공방의 장이 헌재로까지 넘어왔지만 정작 제대로 받아들여진 건 없어 현재까지는 ‘헛심’만 쓴 초라한 결과를 남겼다.

5년간 청구된 14건의 권한쟁의심판 중 일부라도 인용된 것은 검수완박 관련 1건뿐이다. 11건이 기각 또는 각하됐고 2건은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탄핵소추도 결론이 나온 2건은 모두 기각·각하됐고 검사 3명의 탄핵심판은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판단을 선례로 남겼다는 의의는 있으나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은 청구를 제기해 세금을 헛되이 지출하고 헌재에 지나친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한쟁의와 탄핵 사건은 쟁점이 복잡한 데다 양측의 다툼도 치열해 일반 사건들보다 심리·검토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공개 변론도 의무적으로 열어야 해 헌재의 업무 부담도 크다.

이종석 헌재 소장도 인사청문회 당시 “중요 사건이 굉장히 증가했는데 그런 사건은 연구관 4∼6명이 집중적으로 몇 달간 자료를 검토하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서 다른 사건 수십 건을 처리하는 정도의 품이 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해결할 문제를 헌재에 떠넘기는 탓에 정작 일반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헌재의 사건 처리 속도는 해마다 더뎌지고 있다.

물론 헌법 자체가 ‘법과 정치의 경계’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헌법재판은 정치 세력들의 힘의 투쟁을 대신해 헌법 질서 안에서 헌법적 가치를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헌재 판단에 기대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이런 점에서 헌재 결정은 단순한 분쟁 해결을 넘어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합헌적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이런 수준을 넘어 헌재로의 과도한 ‘러시’로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김도읍 법제사법위원장은 작년 10월 헌재 국정감사에서 “결국 국회가, 정치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건을 헌재에 떠넘김으로써 재판이 지연되고 그 피해가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반성하고 싶다”며 “정치가 미숙하고 무능해 헌법재판이 지연되고 그 피해를 국민이 보는 일이 더는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wate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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