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71)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5선을 확정하며 사실상 종신 집권에 들어갔다. 2000년, 2004년, 2012년, 2018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 또다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은 2030년까지 앞으로 6년간 집권한다. 이미 대통령직을 20년, 총리직을 4년(2008~2012년)간 역임한 그는 31년 동안 집권한 구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 가장 오랫동안 러시아를 이끌게 됐다.

러시아는 지난 2020년 헌법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렸고, 푸틴 대통령에게 다시 출마할 기회를 열어뒀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이론상 2030년에 열리는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고,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할 수 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8일 오전 4시 35분 기준, 97.39%를 개표한 결과 푸틴 대통령이 득표율 87.34%로 당선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18년 대선 당시 얻은 득표율(76.69%)보다 높다. 총투표율은 74.22%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5선을 확정했다. /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5선을 확정했다. / AP 연합뉴스

‘비민주적 선거’, ‘불공정 선거’라는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5선에 성공한 것은 러시아 내에선 “그래도 푸틴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치 반대파 탄압, 전쟁 동원령 확대 등으로 비판 여론이 높지만, 러시아 내부에선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가 탄탄하고, 서방 견제까지 이뤄내는 ‘강한 지도자’를 원했던 것이 푸틴 대통령의 5선을 이룬 힘으로 풀이된다.

◇ “푸틴만 한 지도자가 없다” 평가, 스탈린 이후 최장 집권 성공의 이유

한 러시아인은 영국 BBC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며 “1980년대와 1990년대 러시아에는 배급 카드가 있었고 특별한 날에만 귤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매일 귤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없는 미래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며 지지를 표시했다.

이는 러시아인들이 경제난으로 인해 옛 소련이 무너진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1985년, 소련 최고 권력인 공산당 서기장이 되자 소련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혁을 시도했다. 당시 소련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유가가 하락하고, 9년 동안 계속됐던 아프가니스탄과 미국과의 군비 경쟁으로 위기에 처했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경제 개혁 실패에 불만을 품은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결국 소련은 1991년 해체됐고 쿠데타 세력을 물리친 보리스 옐친이 러시아 초대 대통령으로 집권했다.

반대로 푸틴 대통령이 2000년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이후 펼친 ‘강한 러시아’ 정책은 효과를 발휘했다. 2000년대 초반은 고유가였고, 러시아는 석유, 가스 등 자원을 무기로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년 만에 태어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 공격으로 형이 죽고 부모는 간신히 살아남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어린 시절, 공산주의 공동 아파트에 살면서 궁핍한 청년기를 거쳤다. 그는 길거리에서 싸움하던 소년이었고, 스스로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15년 “50년 전 레닌그라드의 거리에서 ‘싸움이 불가피하다면 먼저 주먹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회상한 바 있다.

◇ 서방 제재 불구 탄탄한 경제도 인기 요인

러시아가 2년 넘게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면서 미국 및 유럽 등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섰지만, 러시아인 대부분의 경제적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린 이유 중 하나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과일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마트에는 과일, 채소 등이 풍부하다. / AP 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과일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마트에는 과일, 채소 등이 풍부하다. / AP 연합뉴스

서방의 제재로 대부분의 글로벌 브랜드가 러시아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러시아 자체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체했고 각국의 자동차 브랜드가 러시아를 떠난 자리는 중국산 자동차가 채웠다. 또한 조지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제3국을 통한 병행 수입 덕분에 러시아인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철수한 회사의 운동화부터 휴대전화, 자동차 등 서구 제품을 계속 구매할 수 있다. 일례로 이케아는 러시아 내 17개 매장을 폐쇄했으나, 러시아인은 온라인으로 이케아 가구와 가정용품을 살 수 있다.

물론 러시아의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목표(4%)보다 높은 7%로 물가 상승 압력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1월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다. 지난해 10월(1.1%)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자, 유럽연합(EU)의 경제성장률 예상치(0.9%)를 크게 웃돈다.

또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 정부가 군수품에 막대한 자금을 지출하고, 전쟁에 동원된 이들에게 지원금을 준 것은 오히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올해 러시아 정부의 예산 지출 규모는 2018년의 약 두 배이지만, 세금과 석유 수출로 인해 재정 적자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다.

◇ 우크라戰은 계속될 듯…“열쇠는 미국 대선” 시각도

이제 관심은 푸틴의 장기 집권 아래에서 2022년 2월 이후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과 향후 국제 정세가 어떻게 펼쳐질지다. 푸틴 대통령은 대선 승리 확정 이후 당선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당선 확정 이후 모스크바에 마련된 자신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오늘 특별히 우리 전사들에게 감사하다”며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지만, 전선에선 러시아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푸틴 대통령의 5선 성공보다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 달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차기 미국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여부와 규모는 유럽연합(EU) 등 여타 동맹국의 지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 AFP 연합뉴스

백악관은 지난 10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614억달러(약 80조원) 규모의 군사지원 등이 포함된 안보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나,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이를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WSJ는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놓고 균열을 보이고 있는 유럽 내 선거와 함께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약화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이 시점에서 푸틴 대통령은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 겉으론 ‘중립’ 중국·인도 지지, 향후 세계 정세 변수되나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전에 대한 비난 여론은 크지만, 중국과 인도 등 이번 전쟁의 수혜국들은 ‘무언’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점은 향후 전쟁의 방향을 결정지을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서방의 러시아 제재로 인해 가장 큰 경제적 이득을 취한 국가로 꼽힌다.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립’ 입장을 취하면서도 미국과 동맹국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때 동참하지 않았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대만, 남중국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런던대 중국 연구소 소장인 스티브 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전략적 파트너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역시 러시아에 무인기(드론)와 탄약을 제공하면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러시아가 할인해 판매하는 원유를 구매하며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올해 러시아는 주요 개발도상국들로 구성된 브릭스(BRICS) 연례 정상회의를 의장국으로 주최할 예정이다. 2011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이 모여 시작한 브릭스는 올해 초 이란·아랍에미리트(UAE)·에티오피아·이집트도 회원국으로 편입했다.

CNN은 “전쟁을 종식하라는 전 세계의 압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대선 결과는 중국과 일부 비서구 국가가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옳았다는 견해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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