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최보식 편집인]

10년 전 이맘때, 지인 부부와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울릉도에 갔다. 잘 보고 잘 먹고 잘 쉬었다.

돌아오기 전날 밤 꿈을 꿨다. 사건기자 시절 취재했던 ‘오대양 사건’처럼 다락방에 시신尸身) 같은 형체가 보였다. 꿈에서도 힘이 들었는지 신음하며 식은 땀을 흘렸던 것 같다. 술과 음식을 많이 했고 실내가 더워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날 서울로 돌아가기 전에 울릉도를 요트로 한바퀴 도는 일정이 예약돼 있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지인 부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이런 꿈을 꾸었다. 허무맹랑한 꿈이지만 알려드려야 될 것 같아 말하는 거다. 나는 꿈 같은 것에 상관하지 않지만, 혹시 꺼림칙하게 여기시면 요트 일정을 취소해도 된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 하지 않나..”

그래서 예정된 요트 일정을 하기로 했다. 우리 일행 4명을 태운 요트가 항구를 벗어나 달린지 5, 6분쯤 됐나. 갑자기 모터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요트는 바다 위에 둥둥 뜬 채 흔들거렸다.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요트 주인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 다른 요트가 와서 옮겨타고 되돌아왔다. 

우리 일행은 “어, 그 꿈이 예지몽이었나. 액땜을 한 거네”라며 한마디씩 했다. 나는 현실주의자로서 예시몽을 꾸거나 헛된 것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울릉도 여행에서 마지막 에피소드로 여겼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정기여객선을 탔다. 아직 울릉도 근해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을 때다. 여객선 안에 설치된 TV에서 ‘세월호 사고’ 속보가 흘러나왔다. 이게 뭔가 싶었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고 며칠 동안 신문사에서 칼럼을 쓰는 기자들은 뭐라고 쓸 말이 없었다. 그 내용이 그 내용이었다. 칼럼마다 똑같이 ‘슬픔’ ‘충격’ 단어만 되풀이됐다.

그리고 석달 뒤 세상 사람들이 다 알다시피, 나는 ‘대통령을 들러싼 風聞(풍문)’이라는 칼럼으로 곤욕을 치렀다.

2014년 7월18일자
2014년 7월18일자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風聞)’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지만 정작 대통령 본인은 못 듣고 있는 게 틀림없다.

지난 7일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가 발단이 됐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오전 10시쯤 대통령이 서면(書面)으로 첫 보고를 받은 뒤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기까지 7시간 동안 대면(對面) 보고도, 대통령 주재 회의도 없었다는 게 알려지면서다.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문답.

“대통령께서 집무실에 계셨나?” “그 위치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비서실장이 모르시면 누가 아나?” “비서실장이 일일이 일거수일투족 다 아는 건 아니다.”

대통령 일정을 실시간으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후에는 알 수 있다. 그날은 대형 참사가 발생했던 날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찾거나 물어봤을 것이다.

김 실장이 “내가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비서실장에게도 감추는 대통령의 스케줄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세간에는 “대통령이 그날 모처에서 비선(秘線)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가 만들어졌다. 차라리 “대통령의 소재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곤란하다”고 했으면 이렇게 전개되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루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가 정보지나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 등장했다. 양식 있는 사람들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걸로 여겼다. 행여 누가 화제로 삼으려고 하면 “그런 들으나 마나 한 얘기는 그만”하며 말리곤 했다.

그런 대접을 받던 풍문들이 지난주부터 제도권 언론에서도 다뤄지기 시작했다. 사석에서 몇몇 사람들끼리의 잡담이 아닌 ‘뉴스 자격’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뜻이다.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더욱 드라마틱해졌다. 그는 재산 분할 및 위자료 청구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인에게 결혼 기간 중 일들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그는 정치인 박근혜의 7년간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의 이권 개입, 박지만 미행 의혹, 비선 활동 등 모든 걸 조사하라”며 큰소리를 쳤다.

세상 사람들은 진실 여부를 떠나 이런 상황을 대통령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됐다. 과거 같으면 대통령 지지 세력은 불같이 격분했을 것이다.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식과 이성적 판단이 무너진 것 같다.

국정 운영에서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고 있다면 풍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면서 온갖 루머들이 창궐하는 것이다. 마치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숨어 있던 병균들이 침투하는 것과 같다.

이는 대통령으로서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왜 어디서 면역력이 떨어진 걸까. 현 정권만큼 국정 어젠다가 많았던 적이 없었다. ‘국민 행복’ ‘국민 대통합’ ‘비정상의 정상화’ ‘규제 철폐’ ‘통일 대박’ ‘국가 혁신’…. 하지만 임기 내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될 걸로 믿는 사람들은 없다. 대부분 발표만 해놓고 끝날지 모른다.

쓸 사람을 뽑는 문제만으로 시간과 정력을 몽땅 날린 탓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논란과 불신을 낳은 정권이 없었다. 대통령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분을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저런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을까” 하며 매의 눈으로 응시했다. 이런 누적된 의심이 대통령의 면역력을 서서히 떨어뜨려 온 것이다.

국가 혁신을 이룰 ‘2기(期) 내각의 출범’이라고 내세웠지만, 거리에 나가 누굴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인물 면면을 보고서 선뜻 우리의 앞날에 대한 기대를 걸기가 어렵다. 국가 혁신을 하려면 대통령 본인과 주변 인물의 혁신부터 먼저 해내야 한다.

대통령은 여전히 구(舊)시대의 심벌 같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안고 있다. 그의 충성심과 비서실 안정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김 실장이 그대로 있는데 ‘혁신’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인사 때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세간에는 회자되는데도, 청와대 담장 안에서만 평온한 일상이 계속된다. 대통령이 이들을 불러 “조금이라도 오해받을 처신을 하거나 직무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줬다는 소식도 없다. 설령 이들이 억울하다고 해도 민심을 향한 메시지 차원에서도 필요했을 것이다.

장마철에 곰팡이처럼 확산되는 풍문을 듣지 않기 위해 대통령은 자신의 귀만 막아서는 안 된다. 곰팡이는 햇볕 아래에서 말라죽는 법이다. >

이 칼럼이 게재되고 2주일쯤 지나,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박근혜 대통령이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는 ‘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올렸다.  가토 지국장은 내 칼럼을 인용했다고 했다. 

내 칼럼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대통령 행적을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는 국회 답변이 풍문의 단초가 됐음을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날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고, 또 대통령 주재 회의도 없었다면?.. 당시 ‘대통령이 모처에서 비선과 있었을 것’ ‘공조직을 두고 비선과 대책을 상의했다’ 등 소문이 파다해진 세태를 전한 것이다. 

하지만 산케이 기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 비판과 ‘비선과의 대책 회의’ 의혹을 선정적인 ‘남녀 관계’ 의혹으로 둔갑시켰다. 

이런 오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서도 반복됐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일 내가 정윤회씨와 한 호텔에서 만났다는 것인데, 너무나 기가 막혔다’며 칼럼에 없는 내용을 놓고 비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무리 언론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써도 되는 건가 싶어서 청와대에서 공식 대응토록 했다”며 “청와대 시스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이런 칼럼은 쓸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촉발된 청와대의 산케이 보도 공식 대응은 거대한 화를 불러왔다. 산케이 측에 그렇게 대응할 가치가 있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없지 않다.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 #최보식칼럼, #세월호 10년, #산케이신문, #정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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