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밤 속옷을 가져가기 위해 나타난 ‘서울대 N번방’ 사건의 범인. /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경찰이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인근으로 유인한 ‘서울대 N번방’ 사건의 범인 박모씨의 모습. / 서울경찰청 제공

‘서울대 N번방’ 사건의 주범을 검거할 때 ‘추적단불꽃’의 위장 잠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의 위장 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뉴스1이 24일 보도했다.

추적단불꽃은 2인조로 구성된 탐사취재 기자이자 활동가 단체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취재해 디지털 성범죄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다. 사건의 최초 보도자인 동시에 최초 신고자로서 경찰과 협력해 수사를 진행했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에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경우에만 위장 수사를 할 수 있다. 이번 서울대 N번방 사건에서도 위장 수사가 가능했다면 범인을 보다 일찍 검거할 수 있었단 말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여성의 나체사진 등에 피해자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로 서울대 졸업생 박 모 씨(40)와 강 모 씨(31)를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이들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으나 주변인 사진을 활용해 합성 음란물을 제작 및 유포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박 씨는 2021년 7월부터 대학 동문 등 여성 48명의 사진을 나체 등에 합성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대 로스쿨 출신인 강 씨는 동문을 상대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한 뒤 이들의 신상정보를 박 씨에게 넘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을 검거하는 데는 추적단불꽃의 위장 잠입이 큰 역할을 했다. 추적단불꽃 소속 원은지 씨가 ‘미모의 서울대 아내랑 결혼한 30대 남성’ 신분으로 위장해 텔레그램에 잠입했다.

경찰은 박 씨가 원 씨에게 신뢰의 증표로 아내와의 통화 등을 요구했을 때 여성 수사관이 대신 전화를 받는 등의 방식으로 원 씨와 공조했다.

원 씨를 신뢰하게 된 박 씨는 가상 아내에게 집착하며 자신이 아내를 성폭행해도 괜찮은지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가상 아내의 속옷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다 급기야 실제 속옷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원 씨는 “진짜 줄까?”라며 요구에 응했다. 이후 한 남성이 원 씨가 속옷을 숨긴 장소에 나타났다. 지난 3월부터 수차례 속옷을 가져간 박 씨는 지난 4월 속옷을 가지로 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박 씨는 ‘혹시라도 경고하는데 나 가지고 장난하는 거면 너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고 원 씨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원 씨는 2022년 7월부터 디지털 성범죄 공범을 자처하며 2년 가까이 텔레그램으로 범죄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원 씨 추적을 보조했다.

경찰이 보다 적극적으로 범죄자들에게 다가서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현행법상 위장 수사 범위가 제한돼 있다. 청소년성보호법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위장 수사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에만 위장 수사를 벌일 수 있다.

위장 수사를 하면 검거율이 높아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해당 법률이 시행된 2021년 9월 24일 이후 2023년 상반기까지 진행된 위장 수사 중 신분비공개수사(경찰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증거와 자료를 수집하는 수사)의 검거율은 88.2%, 신분위장 수사(경찰이 가상의 신분 등으로 위장해 진행하는 수사)의 검거율은 94.7%다.

이와 관련해 위장 수사 범위가 성인 여성인 경우까지 확대됐다면 경찰이 서울대 N번방 수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뉴스1에 “해당 사건의 경우 초반 고소를 접수한 이들이 서울대 재학생으로 성인 여성이었고, 수사 초기에는 아동 청소년 성 착취물 정황이 인지되지 않아 위장 수사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며 “위장 수사 범위가 성인까지 확대됐다면 더 명확한 수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사방’ 사건 피해자 공동변호인단 소속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혜명)는 뉴스1 인터뷰에서 “조주빈 사건처럼 이번 ‘서울대 N번방’도 추적단이 몇 년간 행적을 쫓아 신원을 특정하고 검거할 수 있었다”며 “집요한 잠입과 위장 수사가 아니면 범인 검거가 어려운 디지털 성범죄 특성을 고려해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제한이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경찰청은 지난 2월 성 착취물 제작과 배포 등 성인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도 위장 수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및 입법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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