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 화면의 유튜브 영상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검정색 화면의 유튜브 영상 이미지. 사진=Getty Images Bank

2004년 밀양 청소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피해자 동의 없이 가해자 신상을 폭로한 유튜버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경쟁’을 지적했다. 이번 사태를 초기부터 중계하듯 다룬 일부 언론은 피해자에 대한 가해 발언을 제목에 앞세우기도 했다.

이달 들어 유튜버 ‘나락보관소’가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 신상을 폭로하는 영상을 올리며 피해자측 허락을 받아 가해자 44명 신상을 연속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후 피해자 지원 단체 중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가 ‘피해자 동의를 얻었다’는 나락보관소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영상 삭제를 요청했다.

나락보관소는 7일 그간의 영상을 삭제했다가 8일부터 다시 밀양 사건 관련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 유튜버는 9일 영상에서 “심적인 부담감과 언론의 지속적인 압박 때문에 요며칠 밥도 못먹고 힘들었기에 앞으로 저 나락보관소는 밀양사건을 다루지 않고 일반적인 렉카로 돌아가겠다는 거다. 응 구라(거짓말)야”라면서 앞으로도 관련 콘텐츠 생산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판 대상은 나락보관소만이 아니다. 성폭력상담소는 5일 <밀양 가해자 44명 전원공개, 피해자 가족과 합의> <피해자 허락 구했다…가해자 44명 모두 공개> 등과 같이 사실과 다른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며 “나락보관소 영상을 바탕으로 한 자극적 형태의 보도를 자제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7일엔 나락보관소가 피해자와 소통하고 영상을 내린 것처럼 주장한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며 “언론도 무분별한 보도경쟁을 자제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 가해자 신상공개 중심으로 밀양 사건을 이슈화한 한 축은 언론이다. 주요 언론이 보도에 나서기 시작한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수집한 ‘밀양 사건’ 관련 기사는 490건, 하루 평균 163건 이상이다. 성폭력상담소 성명이 나온 5일을 기점으로 초기 사흘간 가해자 신상공개 자체가 이슈화했고, 그 뒤로는 사적제재 문제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초기 사흘(3~5일)간 많은 양의 기사를 생산한 언론사 중 일부는 2차가해성 보도를 하기도 했다. 이 기간 보도량 기준 상위 10위권은 △머니투데이(28건) △YTN(24건) △조선일보(15건) △세계일보(14건) △이데일리·매일신문(각 13건) △국민일보(12건) △데일리안(11건) △파이낸셜뉴스·매일경제(각 10건) △한국경제(9건) △중앙일보(8건) 순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사건 관련 인물이 피해자를 겨냥한 부적절한 발언에 따옴표를 붙여 제목에 썼다. 피해자에 대해 “꽃뱀” “꼬리쳤다” 등의 표현을 하거나,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 부모를 두고 “딸자식을 잘 키워야” 했다고 주장했다는 대목, 가해자 지인으로 알려진 경찰이 피해자 외모를 비하한 표현 등을 제목에 쓴 기사들이다.

위 유형의 기사는 머니투데이·조선일보·매일경제 각 3건, 국민일보·세계일보 각 1건 등 10위권 안에 든 언론사들에서 다수 확인됐다. 보도량 10위권 바깥이지만 동아일보·SBS 등도 유사한 보도를 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2021년 2차 가해자의 발언을 따옴표로 처리해 기사 제목으로 내보내는 보도를 두고 “수많은 언론사가 있고 비슷한 기사를 생산하는 상황에서 해당 언론사가 ‘선택’받기 위해, 피해자 보호 원칙은 내다 버린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YTN의 경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이슈를 전하는 앵커리포트 형태의 기사에서 밀양 성폭행 가해자 신상공개를 ‘롤스로이스남’ ‘케겔운동’ 등과 한 데 묶어 다뤘다.

▲2024년 6월3일~6월8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분석한 '밀양 사건' 관련 일별 보도 추이
▲2024년 6월3일~6월8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분석한 ‘밀양 사건’ 관련 일별 보도 추이

성폭력상담소 비판 이후 피해자 동의 없는 공론화와 사적제재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보도들도 있다. 한국일보 <20년 전에도 ‘밀양 신상털기’…가해자 보호받고, 피해자는 더 궁지로>, 경향신문 <피해자 동의 없는데…누구를 위한 ‘정의 구현’인가>, 한겨레 <‘밀양 성폭행’ 재조명…솜방망이 처벌이 부른 위험한 사적 제재> 등이다. 경향신문, 한겨레는 사태 초기 유튜브 영상을 단순 인용하지 않은 공통점도 있다.

중계성 보도를 쏟아내며 2차 가해를 한 언론사들의 자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 매체 중 그나마 사적 제재 문제를 다룬 기사로는 동아일보 <“합당한 처벌 안 받아, 죗값 치러야” “사적 제재 안돼..엉뚱한 피해로>, 매일경제 <‘밀양 성폭행’ 마녀사냥, 엉뚱한 사람도 잡았는데…폭로 유튜버 수익, 벌금보다 많다니>, 머니투데이 <4번째 밀양 가해자 공개…피해자 동의 없는 사적제재 괜찮나> 등이 확인됐다.

이른바 ‘미투’ 국면 이후 한국기자협회·여성가족부가 공동 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에 따르면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는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고 “경쟁적인 취재나 보도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족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아가 “범죄자에 대한 분노와 복수 감정만을 조성해 처벌 일변도의 단기적 대책에 함몰되지 않도록”해야 하고 “사건 초기 뿐 아니라 성희롱·성폭력 피해 이후, 피해의 회복이나 치유 과정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보도”할 것을 밝히고 있다.

재심 전문 변호사로 꼽히는 박준영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무분별한 신상공개 사례들을  소개하며 “이런 방식의 공론화는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 모두를 괴롭게 하는 것이고 사회의 건강한 시민의식을 무너뜨리는 악행이라고 생각한다”고 깊은 우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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