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열린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15만5000여 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인원수를 기록했다. 스물다섯 해를 거치며 퀴퍼는 ‘그들만의 축제’에서 ‘모두의 대축제’로 차츰 거듭나고 있지만, 성장의 뒷면에는 우리는 모르는 씁쓸한 현실이 숨어 있었다.

7일 <프레시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퀴어퍼레이드를 주최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올해 예산에 1억여 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퀴어퍼레이드 및 추후 행사에서 발생한 수익과 후원 등으로 적자 중 일부는 감당할 수 있지만, 15만5000여 명의 참가자와 60여 개 부스 등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축제로 자리 잡은 퀴어퍼레이드의 명성에 비해 조직위의 재정건전성은 처참한 셈이다.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가 무지개 깃발이 달린 머리띠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직위의 재정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직위가 공개한 2021~2023년 결산안을 보면, 조직위의 2021년 수입과 지출은 3~4억 원대인 반면 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상계액은 89만5000원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존폐 기로에 놓였던 조직위는 2022년 대대적인 모금 운동을 통해 여윳돈을 3400만 원까지 모았지만 이러한 재정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11월까지 500만 원대의 빚을 갚지 못하다 같은 해 12월 후원 행사를 통해 겨우 382만 원의 이월금을 마련했다.

양은석 조직위 사무국장은 “조직위가 벌어들이는 총수익은 3억 원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지출은 계속 증가해 지난해 기준 4억 원대에 달했다”며 “수익과 지출 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재정이 한계에 온 것이 체감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2023년 이월금ⓒ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퀴어퍼레이드를 준비하다 시설 대여비 등으로 인해 재정이 부족하면, 조직위 이사진은 대출을 받아 조직위에 이자 없는 차용금을 제공한다. 퀴어퍼레이드와 모금운동 등으로 수익을 만든 뒤 차용금을 되돌려받지만, 다음 해 행사를 준비할 자금이 부족해지면 또다시 대출을 받아 차용금을 내는 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행사를 준비하는 스태프에게 지급할 인건비도 모자란 것은 마찬가지다. 조직위에 따르면 올해 기준 상근직 구성원은 상임이사, 사무국장, 사무국원 단 세 명뿐이다. 상임이사를 제외한 이사진과 행사 스태프는 모두 무급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 성격을 띤다.

김라온 조직위 이사는 “상근자 3명을 제외한 모든 조직위 구성원들이 개인 시간을 쪼개가며 생업과 행사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면서 “재정이 워낙 열악해 수년간 퀴어문화축제를 준비하며 단 한순간도 다음 행사를 위한 돈이 남아서 안심이 된다는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1일 오후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구 종각역을 출발해 삼일대로를 지나 을지로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 해외 퀴퍼는 후원해도 서울 퀴퍼는 후원 안 하는 이유

퀴어퍼레이드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조직위가 적자에 허덕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 국장은 “기업이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퀴어퍼레이드를 후원하는 해외와 달리, 한국에서는 기업의 참여가 적어 개인 후원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퀴어문화축제인 ‘타이완 LGBT 프라이드’는 기업 후원 규모가 전체 예산의 70%, 개인 후원이 30%를 차지한다. 서울퀴어 퍼레이드는 이와 반대로 기업 후원 비중이 30%, 기념품 구매와 개인 후원 등이 70%를 차지한다.

특히 삼성과 같은 국내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는 후원하면서도 국내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에는 후원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소수자 단체를 후원하는 모습이 기업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직위의 설명이다.

퀴어퍼레이드를 응원하는 개인도 선뜻 기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성소수자 직장인의 경우, 세금 처리를 위해 회사에 기부 내역을 보고하다 ‘아웃팅(Outing;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타인에 의해 성 정체성이 알려지는 상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퀴어퍼레이드 당일 행사를 즐기고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에너지를 얻어 또다시 다음 해 행사를 준비한다는 것이 조직위의 설명이다. 양 국장은 “매해 퀴어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퀴퍼레이드를 직접 만들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있고, 이를 위해 모금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정기 후원, 일시 후원, 문자 후원 등을 통해 후원할 수 있다. 자세한 방법은 조직위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조직위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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