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유튜버가 20년 전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잇따라 공개하면서 ‘사적 제재’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밀양 성폭행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한 한 유튜브 채널은 “피해자의 동의를 얻었다”고 했지만,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지도, 경청하지도, 반영하지도 않았으며 유튜브 콘텐츠를 위해 피해자가 희생된 것”이라며 “향후 피해자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그 어떤 제3자에 의한 공론화도 피해자의 안녕과 안전에 앞설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피해자까지 번진 사적 제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6일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교제 살인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수능 만점 의대생’으로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이른바 ‘신상털기’가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사진과 SNS 계정 등의 개인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11일 아시아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언뜻 정의로워 보이는 사적 응징에 여론은 뜨겁게 호응하고 있으나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상 사적 제재의 일환인 신상공개 행위는 불법이다. 형법상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나아가 모욕죄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법원 역시 아무리 공익적 성격을 가졌더라도 개인의 신상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왔다.

법조계는 ‘정의구현’을 명분으로 국민적 공분을 등에 업고 이어진 사적 제재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 본질과 벗어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고은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개인이 신상 공개 등으로 처벌을 보완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며 “개인이 신상 공개의 기준과 요건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게 되면, 잘못된 정보 공개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이에 대한 구제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 신상 공개 자체가 피해자에게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사적 제재에 이토록 호응하는 이유에 대해선 현재의 사법시스템을 다시 돌아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민 변호사는 “결국 처벌이 미진하게 이뤄졌다면 법정형이나 양형 기준을 재검토하는 등 형사사법 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문제”라며 “사적인 목적이 개입되는 사적 제재는 오히려 기존 시스템의 작동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김지연 변호사는 사적 제재의 원인으로 사법부의 처벌 미흡을 들었다. 특히 밀양 성폭행 사건의 경우 “2013년 6월 성범죄에 관한 친고죄 규정이 삭제·폐지되기 전까지는 성범죄는 합의하면 처벌을 받지 않았다”며 “2013년 이전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반인륜적 성범죄 사건이 해당 규정에 따라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면 다시 그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특별법 입법만이 피해자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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