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졌다. 참사는 예고된 비극이었다.

2023 WBC의 1라운드 탈락을 두고 많은 원인들이 꼽히고 있다. 근본적인 원인에서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대회의 문제점은 자명했다.

체계적인 준비를 마쳐 완벽한 준비 상태를 갖춘 이후에 경기를 치르지 못해 선수들이 온전히 제 기량에서 펼칠 수 없었고, 상대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경기별로 승리의 전술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진=일본, 도쿄ⓒAFPBBNews = News1
사진=일본, 도쿄ⓒAFPBBNews = News1

전쟁으로 따진다면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여러 전투를 계획·조직·수행하는 방책’의 전술부터 실패했고, 각 전쟁별 전투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과 방법이 부족했다. 결국 예고된 실패였다는 뜻이다.

전략의 실패는 KBO와 KBO 기술위원회, 이강철 야구대표팀 감독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다. 전임감독이 없고 마땅한 전지훈련 장소를 따로 구할 수 없었던 대표팀은 결국 수만킬로를 이동한 끝에 겨우 대회 5일 전 대회 장소도 아닌, 평가전 장소인 일본 오사카로 입국하는 촌극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애리조나가 전지훈련지가 아니었던 대표팀 소속 선수들은 전지훈련지에서 한국으로 입국했다가 미국으로 가는 과정을 한 차례씩 더 거치기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한 전지훈련지의 이동거리의 문제, 시차 적응 등의 어려움을 KBO리그 각 팀들의 경우 시간을 두고 회복하면 됐지만 대표팀은 당장 실전 경기들을 치러야 하는 입장이다. 악천후 등으로 준비 과정에서 차질을 빚게 되면 타자들의 컨디션 관리는 물론, 최소 몇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단계별로 투구수를 늘려가며 준비해야 할 투수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당장 시즌 도중 며칠을 더 쉬고 등판하는지, 어떤 장소에서 던지는지, 불펜투구를 언제 했는지, 루틴을 지켰는지 등 온갖 변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투수들이다. 결국 야수들에 비해 두드러진 투수들의 부진의 원인은 결국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젊은 투수들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몸 상태를 100%로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것도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애초에 전임감독이 없었던 만큼 총 6개 구단이 애리조나를 찾고, 이강철 감독이 지휘하는 kt 위즈도 애리조나에 있는만큼 전지훈련지를 애리조나에 정한다는 계획은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하지만 악천후로 인한 훈련 중단과 연습경기 취소, 비행편 결항으로 인한 최대 35시간 이동 등으로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이 발생했다면 대안이 아니라 애초부터 더 환경적응과 시차 적응에 더 유리한 일본 현지 전지훈련이 답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물며 제대로된 협회가 기능한다고 보기 힘든 호주 또한 약 2주간 현지에서 시차 적응 및 훈련을 가졌다. 이처럼 장거리 이동의 어려움과 시차적응 문제 등은 변수를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마땅히 대비했어야 할 일이었다.

경기별 세부 전술에서도 아쉬움을 남긴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경기별 탈락 직후나 대회 탈락 직후 자신의 운영에 대한 실책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아닌 자신에게 비난을 해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투수들의 혹사 논란에 대해선 “한국시리즈에서 몇 명의 투수를 사용하는지 알아보고 이야기 하라”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감독의 경기별 전술은 비난이 아닌 비판 받아야 할 지점이 상당히 많다. 애초에 투수들을 기용하는 방식에서도 보직 파괴는 위험도가 높았던 전략이었다. 애초에 투수들의 장점을 살리는 쪽보다 한계를 더 크게 봤기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셈이 됐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 기책을 통해 이를 풀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신묘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일례로 1차전 호주전은 2차전 선발로 예정됐던 투수들을 제외한 모든 투수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불펜 필승카드로 여겼던 투수들은 나오지 않았고, 경기 중반 실점을 연이어 내준 끝에 허무하게 1점 차로 패했다.

2차전 선발로 나온 김광현 역시 이 감독은 “호주전 7회 정도에 결정됐다. 승부치기까지 갔다면 사용하려 했던 카드”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호주전 하루 전이었던 8일만 해도 김광현 역시 자신이 이틀 후인 10일 일본전에 등판할지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차전 패배로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고 할지라도, 애초에 김광현은 수개월 동안, 그리고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짧은 이닝동안 전력 투구를 할 수 있도록 투구수를 늘려가면서 몸을 만들고, 마인드셋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선발 등판에도 일본전 2회까지 5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던 김광현을 3회에도 올려 2개의 볼넷을 내주는 동안 교체하지 않은 것도 결국 세부 운용의 실패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15명의 투수 가운데 출전은 결국 일부에 편중된 구조였다. 역대 대표팀에서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유독 이번 대표팀에서는 이런 상황들이 더 심화되어 나타났다. 애초에 전략을 짜고 왔지만 세부 전술에서 틀어졌다는 이야기는 상황이 벌어진 후에 주로 하는 변명이다.

 사진=WBCI 제공
사진=WBCI 제공

1~3차전 선발 야수 라인업 기용이나 경기 중 유연한 교체와 작전 등도 나오지 않았다. 최약체이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다고 할지라도 백업 멤버들이 대거 나온 최종 중국전에서 22-2로 승리를 거뒀다는 건, 결국 앞선 경기들에서 최고의 컨디션의 선수들을 쓰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걸었던 1차전 호주전의 전력분석도 결국 의문이 남는다. 호주는 한국과의 선발 투수로 장신 좌완 잭 오로클린, 2번째 투수로 우완 미치 넌본을 내세웠다. 이 둘은 나란히 호투를 펼쳤고 한국은 이들에게 5회 1사까지 퍼펙트로 틀어막히며 경기 초반 흐름을 완전히 내줬다.

그런데 이 둘은 공교롭게도 호주의 최종전이었던 13일 체코전에도 나란히 짝을 맞춰 등판했다. 투구수나 투구 이닝에 따른 휴식일이 공교롭게 겹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애초에 8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1경기 한국전과 4경기 체코전에 이들이 나란히 등판했다는 건 실질적인 에이스 카드였다는 뜻이다. 실제 호주는 이들의 2경기 등판 성적이 모두 좋았고, 경기 승리까지 가져왔다.

하지만 이강철 대표팀 감독은 선발이었던 잭 오로클린은 예상 선발 우선순위에 있던 투수가 아니었다고 밝히며 좌완투수들을 집중적으로 대비했다고 밝혔다. 결국 호주의 필승카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전력분석이나 상대 대응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호주가 이미 본선에 앞서 진행된 6일 JR 규슈와의 평가전에서 오로클린과 넌본의 조합을 가동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당시 호주는 마운드가 무너지며 3-15로 대패를 당했는데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일본에서 진행된 평가전에서 버젓이 나왔던 투수들의 등판을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전력분석의 실패다.

2차전 일본전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일찌감치 선발투수 후보들을 정해뒀고, 그에 이어 나오는 텐덤(2번째 선발투수)도 이마나가 쇼타로 확정해 언론을 통해서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은 예상 선발이었던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3점을 뽑아내며 선전했지만, 후속 투수 이마나가 쇼타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해 다시 침묵했다.

물론 이마나가가 일본 현역 최고의 좌완투수로 꼽히는 이라고 하지만 상대가 뻔히 패를 공개했는데 알고도 공략하지 못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이후 나온 일본의 투수들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였는데 결국 한국은 선발 다르빗슈를 제외한 투수들에게 1점을 뽑는데 그쳤다. 일본 투수들의 기량이 워낙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걸 깨는 게 분석과 대비의 목적이다.

종합하면 이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은 경기 전까지는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믿고 ‘알아서 준비하도록’ 했고, 결국 의지의 문제 때문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선수들의 컨디션 격차가 크자 대회에선 ‘믿을 수 있는 선수만 썼다’는 결론이 된다. 그런데 그마저도 상대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하고 경기에 나섰다고 유추할 수 있다.

많은 야구팬들과 평소 야구를 즐겨 보지 않았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본 이들이 의아했던 지점은 ‘한국 선수들이 저렇게 야구를 못하느냐’는 의문이었다. KBO리그에 낀 거품, 일본과의 확연한 실력 격차 등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기에 과정조차 쉽게 납득할 수 없었던 셈이다.

범인을 찾는 것은 소모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제기라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대회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다시 따져야 한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은 이후 전임감독제부터 대표팀 운영 관리, 선수 선발 시스템 등 모든 것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그것과 동시에 한국야구의 기초 체질이 떨어진 아마야구의 위기를 해소할 방안을 찾고, 나아가 아마체육계와 연계해 근본적인 원인을 되짚어 개선해나가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따지기 위해 당면한 문제의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덮으면 누군가는 또 책임 없이 다른 문제들에 원인을 전가하기 마련이다. 확실한 건 이번 대표팀은 시작부터 졌다는 것이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one.2@maekyung.com)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댓글을 남겨주세요.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