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기부는 언제부턴가 강요되다시피 이뤄진다. 특히 연예인들에게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대중의 잣대가 높다. 도덕성을 강조하려는 것을 넘어, 팬들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룬 성공이니 기부가 당연하다는 식이다. 기부 행위를 두고 연예인들을 줄 세우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논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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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국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각지에 수재민 구호와 피해 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폭우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서 구혜선, 김우빈, 김혜수, 박나래, 수지, 신민아, 싸이, 영탁, 유재석, 이찬원, 이효리, 임시완, 임영웅, 장민호, 한효주(가나다순) 등 여느 때처럼 연예인들도 앞다퉈 기부를 통한 선한 영향력을 전했다.

문제는 연예인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뒤에 본래 기부의 취지를 훼손하는 이들도 있다. 앞서 코로나 팬데믹을 비롯해 대형 화재나 각종 참사가 잇따르면서 연예인 기부 명단이 공개됐고 이 명단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왜 기부를 하지 않느냐’는 황당한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기부를 한 연예인에게도 금액이 적다며 핀잔을 주는 일까지 벌어졌다.


더 놀라운 건 일반 대중은 물론 기부 단체들까지 이런 비상식적인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기부 단체는 최근 인기 아이돌 그룹이 속한 A기획사에 연락을 취해 자신들의 단체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하라고 제안했다.

이 기획사 관계자는 “XXX(기부 단체)에서 기획사로 연락이 왔다. 자신들의 단체를 통해 본사 소속 아이돌 그룹의 이름으로 된 기부금을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본적으로 본사의 경우 소속 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전달하겠다는 의사가 있어야만 이를 이행하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했지만 기부가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이 기획사의 아이돌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요계 TOP급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에게 기부 제안이 들어온 것도 이 아이돌의 ‘이름값’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일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이어져 왔다. 기부 단체가 자신들의 단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위 ‘잘나가는’ 가수(혹은 배우)에게 기부를 재촉하는 것이다.

연예인과 그들의 소속사는 적절치 못한 사회의 인식과 요구가 난감할 수밖에 없는 위치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지’인데, 부적절한 요구를 거절했다가 자칫 ‘기부를 거부하는 연예인’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거나, 기부하더라도 ‘홍보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는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액수의 크고 적음 역시 중요하지 않다. 선행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연예인의 기부를 단순 수치로 환산하고 비교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이미지를 악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기부 단체의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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