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에서 배우로 전직…우울증 환자에 공감받는 ‘워킹 맘’ 연기

배우 이상희
배우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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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정신병도 일종의 병이고, 병이란 것 낫기도 하고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처럼 안고 살아가기도 하잖아요. 사회가 이 사람들을 안아주지는 못하더라도 배척하지는 말아야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고참 간호사인 ‘차지 쌤’ 박수연을 연기한 이상희는 실제 간호사로 일하다가 배우로 전직했다. 무명 시절 생활비가 부족해 간호사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이상희는 영화 ‘베테랑'(2015), ‘글로리데이'(2016), ‘미성년'(2019), 드라마 ‘라이프(2018) 등에서 간호사를 연기했다.

이상희는 27일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사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촬영하기 전에는 간호사 역할이니까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상희는 “저는 일반외과에서 일했고 정신과는 특수과라서 사실 잘 모른다”며 “책을 찾아가면서 정신병동 간호사가 알아야 하는 내용들을 공부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배우 이상희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배우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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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연기한 박수연은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정신병동의 베테랑 간호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워킹 맘’이다.

그의 이야기는 5회에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중학생 딸을 둔 직장인 권주영(김여진 분)이 ‘우울증에 의한 가성 치매’를 진단받고 정신병동에 입원하면서다.

수연은 병원에서 내내 일에 쫓기면서도 아이 교육 때문에 여기저기 전화를 주고받는다. 병동에 앉아있던 주영은 수연을 바라보며 “꼭 나 같네”라고 중얼거린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주영은 수연과 아이 교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수연은 일하는 엄마로서 겪는 어려움과 아이를 향한 미안함을 토로하는데, 주영의 눈에는 과거의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영은 결국 “네가 안 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라며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면서 억눌러왔던 감정을 토로하고, 그런 주영에게 수연은 “애 많이 쓰셨다, 그렇죠?”라며 위로를 건넨다.

이상희는 이 장면에서 뺨에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수연의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그는 “‘애쓰셨다’는 말은 원래 대본에 없었던 제 마음이었다”며 “주영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돕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배우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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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병을 앓는 환자의 이야기와 힘든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정신병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상희는 “촬영 도중 제가 ‘우리가 이 옷을 입고 있으니까 의료진일 뿐이지, 옷을 바꿔 입으면 누가 환자인지 모른다’고 말했는데, 그게 이번 드라마의 좋은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경계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좋았고 위로도 됐다”고 부연했다.

이상희는 또 “정신병도 병인데, 병은 낫기도 하고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 질환처럼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며 “사회가 이 사람들을 안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같이 살 수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저 또한 편견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드라마에 나온 조현병을 보면서 간호대 실습 때 봤던 증세가 위중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을 모든 조현병 환자의 모습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배우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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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독립영화에 출연해온 이상희는 신인 시절부터 자신을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이라고 소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작품마다 배역을 꼼꼼하게 분석하고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과 닮은 자기 모습을 찾아내려 노력한다고 한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수연이 화장기 없는 얼굴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등장하는 것은 이상희의 발상이라고 한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인물의 특징을 고려할 때 화장 없이 립스틱만 바른 모습이라야 현실적이고, 후배 간호사들을 따끔하게 혼내면서도 ‘밉상’으로 보이지 않으려면 동그란 안경을 쓰는 게 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미혼인 이상희는 ‘워킹 맘’을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에 대해선 “주변 친구들이 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멋있는 내 친구의 모습이 조금씩 없어지고 ‘멋있는 엄마’가 되는 모습에 짠한 마음”이라며 인터뷰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런 배우의 노력 덕분인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2주 연속으로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주간 시청 수(Views) 10위 이내에 들었다. 잔잔한 장르적 특성 때문에 단숨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진 않지만, 미국 비평 사이트 IMDb에서 평점 8.3을 기록하는 등 호평받고 있다.

배우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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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는 2015년 독립영화 ‘철원기행’에서 인상적 연기를 선보여 사할린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17년에는 영화 ‘연애담’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 신인연기상과 춘사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는 등 주목받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 앞서 이상희는 직접 가져온 배와 사과를 깎아 대접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길이 너무 막혀서 메이크업은 못 받고 왔다”며 “화장은 직접 했다”고 털어놨다.

이상희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독전2’에도 특별출연했고, 개봉을 기다리는 여러 영화의 촬영도 마친 상태다. 그런 이상희에게 최근 어떻게 지내는지 묻자 “지금은 일단 드라마를 보면서 쉬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대본을 읽을 때도 너무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니까 또 좋더라고요. 제작진과 배우들과 함께 추억하면서 지내고 있죠.”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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